제주 김녕미로공원..아시아 유일 관엽 상징 미로공원
시간 지나 고양이가 마중나오는 곳으로
대만에 있는 ‘고양이 마을’ 허우통처럼, 우리나라에도 고양이 마을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에 언뜻 들었다.
재개발 등으로 길고양이들이 쫓겨나는 곳도 많은데, 길고양이를 핍박하지 않는 동네가 하나둘 생기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고양이 마을은 제주 김녕미로공원에 있다.
미로공원은 제주대학교에서 재직했던 한 미국인 교수가 자신이 평생 모아온 돈을 들여 유명한 디자이너 에드린 피셔의 설계를 바탕으로 설립한 곳이라고 한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관엽 상징 미로공원이라고.
이 공원의 디자인에는 제주와 관련된 다양한 상징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오래 전에 방문했을 때는 나름대로 재미 요소를 갖춘 테마파크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어느덧 주차장에서부터 고양이들이 마중 나오는 고양이 마을이 되어 있었다.
내가 방문한 날에는 아쉽게도 비가 왔다. 하지만 제주의 날씨는 하루에도 여러 번 오락가락 바뀌기 때문에 날씨 때문에 섣불리 실망하는 것은 금물이다.
실제로 공원을 들어설 때부터 나갈 때까지 몇 번이나 우선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걸었다.
보슬비가 내릴 때에는 주차장을 서성거리며 새로운 손님을 구경하던 고양이들이, 빗줄기가 굵어지자 모두 어딘가로 숨어 버렸다. 이곳에는 50여 마리의 길고양이들이 지내고 있다고 한다.
키 작은 고양이들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어야 보인다. 입장권을 끊어 미로공원에 입장하기 이전부터 고양이들의 보금자리가 있다.
고양이들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집에 옹기종기 모여 들어가 몇몇은 벌써 잠이 들었다. 작은 집의 처마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평화로운 낮잠 시간이었다.
매표소를 지나면 잘 꾸며진 공원 내에 들어갈 수 있다. 매표소 입구에도 고양이가 잠들어 있는데, 그 모습이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오가는 사람들이 고양이들을 다소 귀찮게 하는지,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조금씩은 거리를 두고 경계하는 눈치였다.
공원에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돌을 던지거나 막대로 위협하는 행동, 소리를 지르거나 뛰어가는 행동, 껴안거나 안는 행동’ 등은 고양이가 싫어한다는 것,
그리고 고양이는 저마다 개성이 강하고 성격이 다르니 ‘모두 같은 성격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 등이다. 고양이들의 생태를 존중해달라는 안내 문구가 고양이를 세심하게 배려해주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좋았다.
싱그러운 공원과 고양이들, 그리고 조용히 산책하고 싶은 손님들이 어우러진다면 모두에게 힐링이 될 것 같은 숲길이다.
어쩌면 고양이 친화적인 장소가 하나둘 생겨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곳을 고양이 마을로 있게끔 하는 여행객들의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공식적인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북촌 장수마을에는 이미 캣맘들이 급식소를 공식적으로 관리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몇몇 대학교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동아리를 중심으로 급식소를 설치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동물들이 사람과 같은 생명으로서 살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날이 오기까지 고양이 마을의 한결같은 평화를 바라며, 미로공원의 초록색 길을 나도 조용히 산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