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초등학교에 입양, 아이들의 정서를 함양하는 ‘학교멍멍’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지난 25일 대전 선암초등학교를 시작으로, 28일 인천 마곡초등학교, 5월 11일 서울 한산초등학교, 5월 12일 부산 성우학교 총 4개 지역 학교에서 진행한다.
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이 주관하는 이 프로그램의 골자는 이렇다.
각 학교에 개나 토끼를 보내 18주간 각 동물에 대해 배우고, 그 과정에서 생명존중을 고취시킨다는 목적이다.
‘학교멍멍’ 프로그램의 취지는 참으로 옳고, 참으로 선하다.
땅 한번 제대로 밟지 못하고 지내는 요즘 어린이들에게 따뜻하고 살아숨쉬는 동물과의 유대감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실제로 어린 학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개 입학식을 기다리는 내내 혹시나 개들이 들어왔을까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제법 길었던 교장 선생님 이하 각 기관장들의 훈화시간에도 개가 있는 곳을 힐끔힐끔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개를 만져볼 수 있는 시간이 왔을 때. 어린 학생들은 그야말로 벌떼처럼 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선의로 시작한 일의 결과가 선의로 끝나지 않을 때다.
개 한 마리에 달라붙은 어린 손이 줄잡아 열 몇 개. 개 한 마리 털 빗기는 데 붙은 어린 손이 또 여덟아홉개.
만약 여러 사람이 내 몸을 동시에 만져대고, 여러 명이 여러 개의 빗으로 내 머리카락을 빗으려 든다면 어떨까. 어마어마하게 화를 내지 않을까?
개도 마찬가지다. 개에게도 사람처럼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고, 또 성격이 있다.
사람은 화가 나면 말로 화를 내고 손으로 뿌리치지만, 개들의 표현방식은 좀 다르다. 개의 성격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문다.
그래서 개를 반기는 어린이들의 손의 숫자만큼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털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다른 친구들이 견사로 기념촬영을 하러 갈 때, 홀로 화장실로 이동하고 있다. ⓒ노트펫 |
슬슬 피어오르는 걱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데, 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 학생에게는 조금 미안한 표현이지만, 정말 입이 한 됫박은 나와 있었다. 그리고 연신 스마트폰 전면 카메라로 자신의 목과 얼굴을 비춰보고 있었다.
개털 알레르기를 가진 친구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붙여보니 짜증이 한껏 묻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침에 집에서 약 먹고 나왔는데 그래도 빨갛게 올라오고 간지러워요.”
사진을 찍느라 잠시 뒤돈 사이 그 학생의 친구들이 담임 선생님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학교 수업 때문에 알레르기 난 건데, 학교에서 약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학교멍멍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학교의 견사. 견사의 바닥은 나무 재질로 물청소가 불가하다. 견사의 바닥이 목재일 경우 썩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하는 훈련사들도 있다. ⓒ노트펫 |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입학식장에서 만난 학생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만난 김에 물어봤다.
“혹시 학교에서 알레르기 테스트를 했나요?”
“그럼 선생님이 학교멍멍 프로그램 안내서와 동의서를 부모님께 보냈나요?”
대답은 모두 “아니오”였다.
사실 취재를 나가기 전 이 프로그램에 대해 수의사, 훈련사 여러 분에게 의견을 구했다.
어떤 분들은 “미국‧일본에서도 다 하는 거에요.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네요”라고 대답했고, 어떤 분들은 “그거 개가 스트레스 받아서 학생들 교육이 되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그래서 찾아봤다. 진짜 미국과 일본에서도 하는지.
미국으로 이민 가서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한 학부형은 “그런 프로그램을 들어본 적은 없다”라고 대답하고는 “일부 사립학교에서는 할 것도 같은데 만약 미국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해당 프로그램의 장점과 단점을 학부모에게 분명하게 공지한 다음, 아이들의 알레르기 유무 확인하고 부모들의 동의서 받는 게 순서라고 했다.
그리고 학부모회와 교장과 교육구가 충분한 회의를 거친 뒤, 원하는 아이들에게 따로 시간을 내 아이들 스스로가 먹이도 주고 케어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한 초등학교 가정통신문. 오른쪽 페이지의 분홍색으로 표기된 부분이 동물체험학습에 대한 안내 부분이다. ⓒ노트펫 |
일본의 사례를 찾던 중 한 학교의 가정통신문을 발견했다.
가정통신문에는 이렇게 써 있다.
“2월 학습 계획 - 동물 체험 학습
금요일 생활 체험 학습 시간에 ‘동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요’ 시간을 갖습니다.
작은 동물을 만져보는 것뿐만 아니라 보고 그려보는 등 동물의 다양한 측면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체험을 마친 후, 전문 도그 트레이너의 시범공연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체험 당일, 동물과의 만남을 위해 피부를 덮는 긴 바지 등 복장을 준비해주세요.
또 얼마 전 보내드린 ‘동물 알레르기에 관한 동의서’에 확인 후 학교로 보내주세요.
이번 체험 교육의 보호자 참관은 불가합니다.”
ⓒ노트펫 |
일본의 수의사 나카가와 미호코는 지난 2004년 수의사 포털에 올린 ‘교육 시설에서의 개 사육에 대해‘ 라는 글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무책임하게 사육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나카가와는 와카야마와 도쿄의 초등학교의 예를 들었다.
양쪽 모두 주인이 특정되지 않은 상태의 개를 학교에서 길렀다. 와카야마의 개는 아이들에게 ‘위험’했고, 도쿄의 개는 아이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아'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어린이와 개의 감정적인 교류가 교육상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선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안전이 아닐까.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에 대한 대처와 물림 사고에 대한 확실한 대비책, 강아지들에 대한 전문적이고 명확한 관리법이 없다면 인천 마곡초 한 학교에만 3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학교멍멍’ 은 어른들이 봤을 때만 흡족한 프로그램이 될지도 모르겠다.
덧붙임 1. 개털 알레르기 때문에 속상해했던 학생은 다른 친구들이 모두 강아지 구경하러 계단을 날듯이 뛰어갈 때, 혼자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덧붙임 2. 견사의 문제점, 견종 선택, 강아지의 개월 수, 개의 소유권 문제 등등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너무 많지만, 지금까지도 충분히 긴 글이어서 이만 접을 수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