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좋아하는 마음이 다하고 나면 그 마음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가끔씩 생각한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시작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조용히 죽임당하고, 끝내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만다.
지난 사랑이 시들고 말라버린 줄기처럼 까맣게 타들어가 바스러진 다음에는, 그 흔적을 거름 삼아 또 다른 싹이 나고 태연히 두 번째 꽃이 피어날 것이다.
어쩌면 하나의 사랑이 끝날 때 그 세계가 모두 끝장나는 것일 수도 있다.
하나의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고 나면 열쇠 없는 자물쇠로 굳건히 두꺼운 문을 잠가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곳에서 다시 하나의 세계가 시작된다. 거기에는 시작만 있다.
지난 역사와 흔적은 이미 어딘가에 가두어진 채 영영 말을 잃었으므로.
하나의 사랑이 끝장나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때, 이전의 사랑은 어떻게 되어버리는 걸까?
언젠가는 진짜였고, 생생하고, 현재 진행형이었으며, 또렷한 색채로 가득 차 있었지만 어쨌거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나간 시간이 흐릿해져 가는 것을 우리는 그저 오도카니 앉아 바라볼 뿐이다.
내 안에 하나의 세계가 시든 덕분에, 우리는 또 얼마만큼 더 조심스러워진다.
박은지 <흔들리지마 내일도 이 길은 그대로니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