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의 만남' BC 500년경 대리석 너비 88cm 아테네 국립고고학 미술관 |
“멍이야, 냥이야 그만 다퉈. 사이좋게 지내야지. 이집트부터 따지면 만난 지 족히 4000년은 됐잖아. 그런데도 아직 싸울 일이 남아 있어. 둘이 으르렁 대니까 그리스 사람들이 너희 둘을 싸움붙이고, 재미있어 하는 벽화를 남겼잖아.”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야? 바로 너희 둘 멍이와 냥이야. 멍이와 냥이는 이집트에서는 신으로 대접받았지만 이제는 사람과 더불어 사는 반려동물일 뿐이야. 목줄 보이지. 사람들에게 혼나지 않으려면 조신하게 따라와.”
“예, 주인님. 그런데 조각(부조)이 정말 현실적이네요.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는 듯해요. 버릇없이 덤비는 냥이 모습도 그렇고, 사람과 멍이의 근육도 아주 실감나게 표현했어요.”
“역시 멍이야. 이집트에서 조각과 미술은 관념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면 그리스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아름답게 표현하려 했지. 그리스 예술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초기작품이야.”
“에고, 집사와 멍이가 죽이 잘 맞는구나. 나는 잠이나 자야겠다용. 졸리다용”
“그러렴. 그렇지 않아도 그리스에 온 김에 주인에 대한 멍이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얘기하려 했어. 냥이가 불편해 할까봐 걱정했는데 잘됐네. 멍이야, 아래 있는 멍이가 누군지 알아?”
“모를 리가 있나요. 우리 견공계의 전설적인 충견 아르고스죠. 트로이 전쟁에 나갔다 20년 만에 돌아온 주인 오디세우스를 알아보는 역사적 장면으로, 정말 조건 없는 사랑과 충성의 대서사시이며, 변하지 않는 인간과 멍이의 영원한 관계의 지속성과 사랑과 우정의...”
“그만! 그만! 왜 그렇게 흥분해.”
시몽 부에의 그림을 도안으로 한 프랑스 테피스트리 '오디세우스를 알아보는 아르고스' 1650경 브장송 고고미술관 |
“흥분할 만하죠. 그의 아내도, 친구도, 유모도, 아무도 몰라본 오디세우스를 아르고스만 알아보고, 드디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숨을 거뒀잖아요, 나 할 말 많아요.”
“그래도 배경설명을 찬찬히 해야지 사람들이 알아듣잖아. 내가 설명을 하고 멍이 네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자고.”
오디세우스는 호모의 대서사시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주인공이다. 이타카의 왕으로 문무를 겸비한 지략가다. 트로이 목마의 아이디어를 내서 10년간의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사령관 아가멤논 등 다른 영웅들은 전쟁에 이긴 뒤 바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오디세우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미움 등으로 전쟁이 끝난 뒤에도 10년 동안 모진 고난을 이겨낸 뒤에야 고향에 돌아간다.
그의 아내인 왕비 페넬로페는 20년간 그를 기다린다. 연애하기 좋아하는 그리스인으로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왕위를 노리는 여러 나라의 왕족과 야심가들은 패거리로 몰려들어 오디세우스는 죽었으니 결혼해야 한다고 페넬로페를 압박한다.
페넬로페는 여러 꾀로 이를 물리치고 오디세우스가 돌아와 구혼자들을 죽일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는 다시 결합한다. 그래서 페넬로페를 정절의 상징으로 떠받든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 아가멤논을 정부와 함께 살해한 왕비 클리템네스트라와는 비교된다. 이러한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기록한 게 '오디세이'이고, 트로이 전쟁을 기록한 게 '일리아드'다.
그래서 ‘00오디세이’는 00에 대한 탐험, 여행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됐다. 예컨대 냥이와 멍이에 관한 우리이야기는 '명화속의 냥이와 멍이 오디세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갑자기 뭔 소리냐용. 집사들의 특징이 옆으로 세기다용.”
“멍이야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네가 무슨 얘기 했어?”
“냥이가 잠꼬대 했나봐요. 위에서 아르고스가 오디세우스를 알아보고 반가워하고 있죠. 뒤에 있는 사람이 가장 가까운 친구인 에우마이오스죠. 나중에 이친구와 함께 왕비에 대한 구혼자들을 물리치는데 그도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어요. 아래 도자기를 볼까요. 왕비 페넬로페도 끝까지 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왕의 유모도 그의 발을 씻으면서야 그가 오디세우스임을 알아보는 장면이에요.”
“그래 위의 직물그림(테피스트리)에서 아르고스와 오디세우스가 서로를 알아보고 나누는 따뜻한 눈빛을 통해 둘 사이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또 그리스시대 도자기에서 보이는 유모와 오디세우스의 눈빛을 보면 그리스 예술가들이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통달한 사실도 알 수 있어.”
'오디세우스와 늙은 유모' 기원전 5세기, 도자기, 높이 20.5cm, 키우시 국립 고고학 박물관 |
“아르고스는 사냥을 하고 함께 놀던 주인과의 정다웠던 때를 기억하고 주인만을 기다렸어요. 20년간 성문 앞을 지키다 주인을 보고서야 눈을 감을 수 있었죠. 그를 사랑한다면 그의 자그마한 체취, 그의 숨결, 그의 터럭 한 올에서도 그를 떠올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야, 멍이 네가 사람보다 후각도 뛰어나고 동물적 본능이 훌륭해서 아닐까.”
“그게 아닌 거 같아요. 사람들은 뭔가 조건을 전제로 관계를 맺기 때문이죠. 예컨대 깊은 우정을 뜻하는 말들을 보죠. 지음, 관포지교가 친구간의 지고지순한 우정을 가리키는 말인데 다 전제가 있어요. 지음은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잘 이해해 주던 친구이고, 관포지교는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친구를 뜻하죠. 그냥 좋은 친구는 없어요. 그런데 멍이의 주인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이죠. 이게 큰 차이예요.”
짜짜라짜라짜라짠짜짜
내가 필요할 때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든지 달려갈게
(중략)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특급 사랑이야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 거야
무조건 달려갈 거야
“한 번 들어보세요. 가수 박상철의 노래 “무조건”이에요. 이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어요. 우리 멍이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어쩌면 이렇게 잘 표현했나. 인간들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감히 노래 부를 수 있을까. 바람 또는 희망이라면 모를까. 사람들은 사랑은 변한다고 하잖아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극히 예외적이죠. 하지만 우리 멍이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렇지 않아요.“
“인간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좀 오버한다는 느낌이지만 새길 부문도 있네. 그래 멍이야, 나도 우정과 사랑에 대해 너에게 배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