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제이가 항암 치료를 하러 다니는 병원까지는 차로 약 30-40여 분,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길찾기 검색을 하면 그렇게 나오지만 실제로 버스를 기다리거나 차가 막히는 시간을 더하면 당연히 훨씬 더 걸린다고 봐야 한다.
처음 신혼집을 구해 이사 왔을 때에는 집 앞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24시 동물병원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초반에 예방접종이나 심장사상충 예방 정도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병원에서 해결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제이의 항암치료를 진행하기에는 어려운 듯해 다시 집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병원을 선택해야 했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기본적으로 자신의 익숙한 공간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따라서 병원을 오가는 것 자체가 상당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어서, 차에만 타면 멀미를 하거나 개구호흡(입을 벌리고 헥헥 숨을 쉬는 것)을 하는 고양이들도 있다.
집에서 거리가 먼 병원을 다니는 것은 그런 점에서 고민스러운 일이었지만 종양 검사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고, 다행히 제이는 큰 스트레스 없이 차를 잘 타고 다녀 주었다.
다만 이동장에 있는 걸 너무 싫어하고 자꾸 야옹거리며 빠져나오려고 해서, 이동장을 열어주면 내 발밑에 눕거나 아예 뒷자리로 넘어가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하기야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오가다 보니 차를 타는 것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털갈이 시기가 되면 차 안에 털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날아다녔고 신랑은 다소 괴로워했지만(……) 그나마 스크래치는 안 해서 다행이었다.
보통은 주기적으로 매 주말에 신랑과 함께 차를 타고 병원에 갔지만, 가끔씩 제이에게 돌발적인 증상이 나타나면 재택근무를 하는 내가 평일이라도 혼자 제이를 데리고 급히 병원에 가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제이를 데리고 외출하면, 평소 익숙하던 세상은 갑자기 너무나 시끄러운 곳이 된다. 툭 하면 빵빵 클랙슨을 울리는 버스 기사님이나, 돌고래 주파수로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유난스러운 엄마 심정이 되어 이동장 안에 귀마개라도 넣어주고 싶어진다.
집안에서도 고양이들이 깜짝 놀랄 만한 소음을 안 만들려고 무의식중에 신경 쓰는 편인데, 나 스스로가 소음에 민감한 탓도 있을 것이다. 집안에 TV를 안 틀어놓는 것은 물론, 가끔은 노랫소리도 시끄럽게 느껴져 문득 모든 소리를 끄고 완벽히 고요해져야 비로소 마음이 평화로워지곤 했다.
아무튼 나뿐만 아니라 보호해야 할 내 고양이를 데리고 이동할 때 나는 세상이 더 크고 거칠게 느껴졌다. 대중교통 안에서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하는 건 물론이고 이동장 안에서 영문 모르고 흔들리고 있을 제이도 걱정됐다.
각종 소리부터 누군가와 부딪치는 것까지, 사소하게 불안한 것이 많았고 제이보다 내가 더 초조했다. 제이는 길에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길고양이들과 똑같은 고양이였지만, 이동장 안에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는 내 보호와 보살핌이 필요한 여린 아기였다.
이상하게 고양이는 이동장에 들어가면 더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어서(가벼운 이동장을 써도 왠지 무겁다) 겨우 3kg인 제이를 데리고 다니면서도 근육 없는 팔에 알이 배겼다.
그래도 엄마 마음으로 ‘버스 두 번 타고 혼자 병원 가기’ 미션을 몇 번쯤 잘 해결해냈다. 급한 마음에 비해 다행히 제이에게 나타난 증상도 매번 별 게 아니어서 다시 무사 귀가할 수 있었다.
고양이에게 세상은 너무 시끄럽다. 어쩌면 신랑 말대로, 내가 고양이를 너무 과잉보호하는 탓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힘들다고, 무겁다고 징징거리는 건 세상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나지만 제이와 단둘이 세상에 나갈 때만큼은 나도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는 사람, 강하고 튼튼한 엄마가 된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 고양이 제이의 항암 치료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아래 도서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하는 걸까>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0725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