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최근 강아지의 사회성과 유전자의 관계를 다룬 논문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떤 기사는 심지어 이 논문을 근거로 '강아지는 인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병에 걸렸다'는 제목을 붙였는데요.
인간을 사랑하는 병! 강아지에게 정말로 그런 병이 있는걸까요?
프린스턴대학교와 오리건 주립대학교 연구진이 지난 7월19일 국제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발표한 '인간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과 관련된 반려견의 사회성 유전자 변이에 대하여'라는 논문이 그것입니다.
논문에서는 과학적으로 엄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여러 실험조건을 설계하고, 강아지의 사회성을 늑대와 비교 분석하고, 각 강아지와 늑대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실험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은 연구 내용을 모르도록 하는(맹검법) 등등 복잡한 내용이 나오지요.
여기까지만 말씀드려도 지루하실 것 같으니 결과만 쉽게 설명해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연구진은 18마리 개와 10마리 늑대를 상대로 실험을 하는데요. 줄을 당기면 열리는 상자 안에 소시지를 넣어 놓고, 주위에 사람이 있는 가운데 늑대와 개가 어떤 행동을 보이는 지 관찰합니다.
그 결과 늑대는 곧바로 줄을 당겨 상자를 여는 경향을 보인 반면, 개들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주변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는 경향을 보입니다.
사회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죠. 연구진은 이후 실험 대상 동물들의 사회성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 유전자(GTF2I, GTF2IRD1)를 분석해 이 부분의 DNA 변이가 심할수록 사교성이 더 뛰어나다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개와 늑대를 비교해 볼 때 이 유전자의 변이가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에 대한 해답이 될 가능성이 생긴 셈이지요. 그래서 이 연구결과는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람에게도 사교성과 관련된 유전자 부위가 있습니다. 개와 마찬가지로 이 부분의 DNA 변이가 심해질 경우 (정신적 장애와 함께) 타인에 대한 과도한 신뢰감과 다정함을 보이는 증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을 논문 제목에서 언급한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이라고 하고요. 사람의 사회성과 관련된 유전자가 강아지에서도 사회성과 연관이 있더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과학적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사람에게서 해당 부분의 변이가 질병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강아지에게서도 그것이 병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유전자의 변이가 문제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인간을 사랑하는 병'이란 낭만적인 표현이라고 생각되지만 다소 과장된 제목인 셈입니다. 조건 없이 인간을 믿고 따르는 강아지들의 속성을 절묘하게 포착했다고나 할까요.
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강아지는 사람의 좋은 친구랍니다.
양이삭 수의사(yes97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