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을 헤매는 유기된 모든 것들의 이야기
햄햄 작가 일러스트 '주인님, 어디 계세요?'
[노트펫] 어두워진 길 위에서, 비가 쏟아지는 우산 아래에서, 노을 지는 공원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서성이고 있다.
설마 주인님이 자신을 버리고 갔으리라는 짐작은 아예 머릿속에 없다.
그저 '주인님, 어디 계세요?'하고 먼 길을 차곡차곡 걷는다.
시바견 한 마리가 주인을 찾아 길을 헤매는 이 일러스트 시리즈는 다음 브런치에서 ‘일러스트 대상’을 수상하고, 정기 매거진으로 연재되며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햄햄 작가에게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유기견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은 강아지 한 마리의 이야기가 아닌, 유기된 모든 것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ㅇㅇ |
* 안녕하세요. <주인님, 어디 계세요?>뿐만 아니라 인스타에서도 시바견을 통해 일상 이야기를 그림으로 전하고 계신데요. 언제부터 시바견을 그리기 시작하셨나요?
올해 1월 초부터 천천히 시작한 것 같아요. 뭔가 새해의 다짐이라던가, 큰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처음엔 회사 업무의 일환으로 SNS를 알게 되었는데, 하면 할수록 정말 새롭고 재밌었어요. 그러다가 동물들의 사랑스러운 사진을 보게 되었고 자연스레 모으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약간 중독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요. 아침에 일어나면 1시간 정도 매일 자료를 찾았으니까요. 그렇게 모은 자료가 지금은 어느새 수천 장이에요.
성인이 된 후로 제일 집중하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그리지 못했던 개인적인 일러스트가 다시 그리고 싶어졌고, 기왕이면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본 시바견의 인스타그램 팬아트를 그렸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재미있다, 좀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 동기였던 것 같아요.
* 특히 시바견을 많이 그리시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예요. 사람 같으면서도 강아지 같은 그 오묘하고 익살맞은 표정이 자꾸 그리고 싶어져요.
* <주인님, 어디 계세요?>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처음 이야기를 기획하게 된 시점은 3년 전 길가에서 한 강아지를 봤을 때였어요. 시골에서 키우는 믹스견이었고 가슴에 똥이 납작하게 붙어 있었고 꼬질꼬질했지만 사랑스러운 강아지였죠.
어떤 사람을 봐도 귀를 내리고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행복한 집 강아지였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강아지만큼이나 길가를 배회하는 강아지들도 많은 세상이죠. 주인을 찾아 길가를 헤매는 강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평소에도 유기견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나요?
사실 유기견 문제에 관심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찾아보진 못했어요. 보다 보면 제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미미하고, 마음은 하루 종일 무겁게 가라앉으니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저와 비슷할 것 같아요. 도와주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움직여야 할지 모르는. 그래서 전 제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그림책의 형태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덮으시며 각자의 마음속에 작은 울림이 있다면 작가로서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아요.
잡았다 시바 |
* 그림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주인을 찾아 산과 바다, 꽃밭과 도로를 거니는 유기견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렇지만 진심을 담아 표현하고 싶었어요. 강아지뿐 아니라 ‘유기된 모든 것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어요.
세상에 홀로 떨어져 나와 원치 않는 낯선 길을 걷는 강아지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서 세상에 유기된 스스로를 다독이고자 그림을 그렸습니다. 공감과 위안이 될 수 있길 바라면서요.
제 그림을 보시는 모든 분들에게 한 줌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인스타에 올리시는 한 컷 그림은 분위기가 또 달라요. 마찬가지로 시바견이 나오지만 오히려 유쾌한 분위기로, 팔로워가 벌써 17.4천이 넘었더라고요.
시바견이 ‘벌써 월요일이라니, 시바’ 하는 식으로 일상을 그린 장면들이에요.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아마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이유는 ‘시바의 마음이 이해돼서’인 것 같아요.
바른말 고운말을 쓰며 예절을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교육받아왔지만 살다보면 ‘욕’이 절실히 하고 싶은 순간이 오잖아요.
그런 가려운 순간을 ‘시바’가 살살 긁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게으르고 쓸데없지만, 행복한 일상도 있다’라고,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격의 없이 전달하고 싶었어요.
춤춰 시바 |
* 평소 어떻게 작업하세요?
제 작업의 대부분은 디지털 아트를 기반으로 해요. 하지만 보시는 분들은 손작업으로 인식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손맛이 나는 브러쉬나 질감을 즐겨 쓰다 보니 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 현재 키우는 반려견이 있으신가요?
아쉽게도 현재는 반려견과 함께 살지 않아요. 서울로 온 후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혼자 집에서 하루 종일 주인을 기다리며 살게 하는 게 반려견한테도 힘든 생활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함께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데려오자는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혼자였어요. 저도 오랫동안 기다려왔고 어느 정도 준비를 마쳤으니, 내년에는 작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고 반려견을 맞이하고 싶어요.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마디 해주세요.
어릴 적부터 동물을 정말 좋아해서 다큐멘터리를 하루 종일 보며 수의사나 동물학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으니 그림으로 발산해보려고 해요.
세상엔 매력적이고 오묘한 페이스의 동물들이 넘쳐나니 앞으로도 많이 도전해보려 합니다. 차기작도 현재 열심히 준비 중에 있습니다.
가제는 <춤춰, 시바>로 소심하지만 흥이 넘치는 시바견을 주인공으로 한 자전적 백수 에세이입니다. 20대를 회사 생활로 꽉꽉 채우면서 우여곡절도 고민도 많았던 저는 퇴사를 결심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제 또래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으니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실 것 같아요. 이 작품도 예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늘 저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좋은 작품으로 보답할 수 있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한편 <주인님, 어디 계세요?>는 곧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으로, 현재 사전 예약을 받고 있다. (https://brunch.co.kr/magazine/whereare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