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게 이야기
[양병찬 과학번역가] 모든 백신은 종류를 불문하고 오염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백신이 효과를 발휘하는 데 필요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외에, 어떠한 침입자도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백신이나 약물이 세균에 감염되었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방법은, 특이하게도 게(crab)의 파란 피에 의존한다.
게의 피는 아름다운 연푸른색으로, 현재 미국의 모든 연구소에서는 살아있는 게에게서 파란 피를 몇 양동이씩 채취한다.
그러나 게는 사실 틀린 용어이며, 정확한 명칭은 길이가 46센티미터에 눈이 자그마치 13개나 있으며 거미나 전갈과 가까운 친척인 투구게9horseshoe crab)다.
투구게는 매우 오래된 종으로, 공룡보다 1억 년 전 쯤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이 투구게의 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였다. 투구게의 피에 특정한 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미량의 세균을 탐지하여 혈전과 유사한 질긴 그물망 속에 가두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화합물을 코아굴로겐(coagulogen)이라고 부르는데, 투구게의 본거지인 얕은 연안수(coastal water)에 풍부한 세균을 방어하기 위해 진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체 구조가 복잡해서 소화관과 폐에 침투한 세균이 혈류로 들어가기가 어려운 인간과 달리, 투구게는 거미와 비슷한 내부구조를 갖고 있어서 분리된 구획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투구게의 피는 체내를 마구 휘젓고 돌아다니며 세포에 영양분을 넉넉히 공급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세균이 투구게의 내부에 널리 퍼져나가기도 쉽다.
이처럼 개방적인 구조에서 투구게는 코아굴로겐을 이용하여 세균을 불투과성 끈끈이 망 속에 가둬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아굴로겐은 그 판타스틱한 방어능력 때문에 투구게의 머리에 ‘코아굴로겐 1쿼트당 15,000달러’라는 비싼 가격표를 붙였다.
왜냐하면 제약사들이 코아굴로겐을 이용하여 모든 용액 속의 세균오염 여부를 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백신을 접종받았다면, 백신의 안전성을 확인해 준 투구게에게 감사해야 한다.
코아굴로겐은 매우 민감하므로, 1ppt의 세균독소에 반응하여 오염된 용액을 젤(gel)로 만든다. 그 검사를 생물학적 내독소시험limulus amebocyte lysate(LAL)이라고 부르며, 놀랍도록 쉽고 빠르고 정확해서 제약산업에서 인기가 매우 높다.
많은 회사들이 미국 동해안의 얕은 물에서 50여만 마리의 투구게를 잡아들여, 심장 부근에 구멍을 뚫어 피를 뽑아 코아굴로겐 생성세포(coagulogen-producing cell)를 수집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양병찬 과학번역가(https://www.facebook.com/OccucySesamelStr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