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한 때 ‘평화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고귀한 신분의 새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비둘기는 더 이상 고귀한 신분이 아닌‘더러움의 상징’또는‘비만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우리 도심 곳곳은 오래 전부터 비둘기의 분비물로 장식되어졌고, 다리 밑이나 건물 틈새도 비둘기들의 아지트가 되어가고 있다.
ⓒ캉스독스 도심 비둘기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사람들은 위협적인 존재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
많은 시민들은 비둘기를 날렵한 새가 아닌‘날개가 달린 큰 쥐'로 여긴다. 비둘기들의 날갯짓 한 번에 수많은 기생충들이 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피둥피둥 살이 쪄서 멀리 날지 못하는 비둘기를 보면‘닭둘기’라고 부른다. 그런 살찌고 경계심 없는 비둘기는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사람을 봐도 겁을 내지 않는다. 비둘기는 사람을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을 주지 않는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비둘기는 유사시 사용할 비상식량’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보는 비둘기라는 존재는‘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밥 대신 먹는 용도의 새’정도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살아있는 상태에서 저장하고 있는 가금육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우리와는 달리 비둘기를 음식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중국을 방문했을때 당시 어느 슈퍼마켓 냉장고에서 수북하게 쌓여져 있는 가금육을 본 적이 있었다. 그 크기가 닭보다 작았는데, 그 정체가 궁금하여 주인이게 물어보니 비둘기 고기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물론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받긴 했지만, 비둘기 고기를 먹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했다.
작년 가을 길거리를 걷다가 비둘기 무리를 만났다. 그런데 비둘기들은 내가 가까이 가도 움직일 조짐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휴대전화를 꺼내서 사진 촬영을 하고, 찰칵하는 소리가 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과연 당시 비둘기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존재감이 없는 투명인간이었을까, 아니면 비둘기들은‘이제 사람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거나 ‘하나도 무섭지 않다’이런 의미일까?
솔직히 이 글을 쓰는 나 자신 확실한 대답은 못하겠다. 하지만 비둘기의 이런 경계심 없는 태도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칫 이런 나태한 생각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자신들을 사람들의 비상식량이 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