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유전자, 코끼리를 암에서 보호
[양병찬 과학번역가] 엄청난 몸집을 감안할 때, 코끼리는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그러나 어찌어찌 부활한 태곳적 유전자(좀비 유전자)가 코끼리를 암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Rare 'zombie' gene that fights cancer found in elephants./ @ 폭스뉴스(참고 1) |
코끼리들은 암에 많이 걸려야 이치에 맞는 것 같다.
그들은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몸무게가 무려 8톤씩이나 나간다. 그렇게 커다랗게 되려면 많은 세포가 필요하다. 그 세포들은 모두 하나의 수정란에서 비롯되며, 하나의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변이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데, 그 변이가 결국에는 암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코끼리들은 덩치가 작은 동물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높지 않다. 심지어 일부 연구자들은 그들이 인간보다 암에 덜 걸릴 거라고 제안한다(참고 2).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이번 주 화요일, 한 연구팀은 그 미스터리에 대한 부분적 해답을 내놓았다. 그 내용인즉, 코끼리는 독특한 태곳적 유전자를 하나 갖고 있는데, 이 유전자가 'DNA가 손상된 세포'들을 공격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코끼리를 암으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참고 3).
진화과정의 어디쯤에서 그 유전자는 활동을 중단하고 휴면상태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어찌어찌 부활하여 특별한 유용성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를테면 한 조각의 좀비 DNA인 셈이다.
"코끼리가 암과 싸우는 방법을 이해하면, 신약개발에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Cell Reports》에 실린 이번 논문의 공저자인 시카고 대학교의 빈센트 J. 린치(진화생물학)는 말했다. "그것은 '암의 발병과정'에 대한 기본적 사항들을 이야기해 준다. 어쩌면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p53
과학자들은 1970년대 이후 '덩치 큰 동물들이 암에 잘 걸리지 않는 이유'를 골똘히 생각해 왔다. 최근 일부 연구자들은 암과 싸우는 기발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그런 동물들의 유전자와 세포를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초기연구 중 일부는 p53이라는 잘 알려진 항암유전자에 주목했다. 그것은 'DNA 손상을 감지하는 단백질'을 코딩하는데, 그 단백질은 DNA의 손상에 반응하여 수많은 다른 유전자들의 스위치를 켠다. 이때 세포는 망가진 유전자를 수리하거나 아얘 자살함으로써, 후손들이 더 많은 변이를 보유할 가능성을 배제하게 된다.
2015년 린치가 이끄는 연구진은, 코끼리가 특이한 p53 유전자를 진화시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들은 그 유전자를 하나만 갖고 있는데, 코끼리들은 무려 20개씩이나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참고 4). 한편 유타 대학교의 연구자들도 별도의 연구에서 동일한 사실을 발견했다(참고 5).
두 연구팀은 한 목소리로 "코끼리의 유전체에 우글거리는 p53들이 DNA 손상에 공격적으로 대응한다"고 제안했다. 즉, 고장난 세포를 수리하느라 애쓰기보다는, 손상된 세포의 사멸을 지휘할 뿐이라는 것이다.
LIF6
린치가 이끄는 연구진은 후속연구를 통해 '암과 싸우는 유전자'를 계속 탐색했고, 이번에 또 다른 유전자를 하나 찾아내어 《Cell Reports》에 보고했다. 그것은 LIF6라는 유전자로, 코끼리들만 보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코끼리의 p53 단백질은 DNA 손상에 대응하여 LIF6의 스위치를 켜고, 이 유전자가 생성한 LIF6 단백질은 세포를 파괴한다."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LIF6 단백질이 세포의 미세한 연료생산공장 - 미토콘드리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LIF6 단백질은 미토콘드리아에 구멍을 뚫어, 그 속의 분자들을 누출시킨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 속의 분자들은 독성이 있으므로, 세포의 사멸을 초래하게 된다"고 그들은 설명했다.
※ 출처: 참고 3 |
"그들은 퍼즐에 중요한 조각을 추가했다"라고 유타 대학교 산하 헌츠먼 암연구소의 조슈아 D. 쉬프먼(소아종양학)은 논평했다. 그 역시 코끼리의 암을 다년간 연구해 왔다. 'LIF6가 린치 연구팀이 제안한 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려면 추가실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은 매우 그럴 듯해 보인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LIF6의 진화사
심층분석 결과, LIF6는 매우 특이한 진화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든 포유류들은 그와 비슷한 유전자를 하나 갖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그것을 간단히 LIF라고 부른다. LIF는 인간의 세포에서 여러 가지 상이한 역할들을 수행하는데, 그중에는 세포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포유류들(인간 포함)은 단 하나의 LIF를 갖고 있으며, 유일한 예외는 코끼리와 그 가까운 친척들(예: 바다소)이다. 코끼리의 친척들은 LIF를 여러 개 갖고 있으며, 코끼리는 10개 갖고 있다.
LIF가 여러 개 생겨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8,000여만 년 전 코끼리와 바다소(manatee)의 조상에서 '엉성한 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LIF 유전자의 새로운 복사본에는 DNA 신장부(stretch)가 없었는데, 이것은 on/off 스위치로 작용하는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이 유전자들은 단백질을 만들 수 없는 소위 위유전자(pseudogene)다. (인간은 이러한 '僞유전자'를 수천 카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코끼리의 조상들이 10개의 LIF 유전자를 진화시켰을 때, 뭔가 괄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동안 '죽어 있었던 유전자' 중에서 하나가 좀비처럼 부활했는데, 그게 바로 LIF6이었다. 진화사의 어디쯤에서 세포에 일어난 변이가 LIF6 옆에 스위치를 삽입하는 바람에, 그 유전자가 p53에 의해 활성화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활한 유전자는 이제 단백질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역할이 뭔가 새로운 것, 즉 '미토콘드리아를 공격하여 손상된 세포를 살해하는 것'이었다.
LIFG6 유전자가 맨 처음 부활한 때가 언제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진은 화석에서 입수한 DNA를 면밀히 분석했다.
마스토돈(Mastodon: 코끼리와 닮은 신생대 3기의 대형 포유동물)과 매머드도 LIF6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연구진은 그들이 '2,600만 년 전 살았던 공통조상'을 현대 코끼리와 공유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LIF6가 부활한 시기'와 '현생코끼리들의 조상이 p53을 추가로 진화시킨 시기'는 일치한다"고 린치는 제안했다. LIF6와 여러 벌의 p53이 결합하여 한층 강화된 '암에 대한 방어체제'를 구축함에 따라, 코끼리는 엄청나게 큰 몸집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코끼리는 p53의 지시에 따르는 새로운 유전자들을 속속 진화시켰을 것이다. 또한 p53과 전혀 별개로 작동하는 항암방법도 진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린치는 덧붙였다.
"내가 지금까지 발견한 내용은 여기까지다. 코끼리의 유전체 속에는 LIF6와 비슷한 스토리들이 많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밝혀내고 싶다"라고 린치는 말했다.
양병찬 과학번역가(https://www.facebook.com/OccucySesamelStreet)
※ 참고문헌
1. http://www.foxnews.com/science/2018/08/16/elephants-rarely-get-cancer-because-their-bodies-have-rare-zombie-gene.html
2. https://www.nytimes.com/2015/10/13/science/why-elephants-get-less-cancer.html
3. https://www.cell.com/cell-reports/fulltext/S2211-1247(18)31145-8
4. https://www.ncbi.nlm.nih.gov/pubmed/27642012
5.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4858328/
※ 출처: 칼 짐머, "코끼리를 암에서 보호해 주는 좀비 유전자", 뉴욕타임스 Aug. 14, 2018 https://www.nytimes.com/2018/08/14/science/the-zombie-gene-that-may-protect-elephants-from-cance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