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내내 짐정리만 하느라 잠도 줄여가며 난리를 쳤건만 결국 짐을 다 못싼 이사 전날.
아예 잠잘 생각도 않고 대낮처럼 온집안에 불을 켜놓은 채 부산스럽게 돌아치자 고양이들도 뭐가 있다는 걸 아는 듯 했다. 모를 수가 없었겠지.
하지만 새벽 2시가 되자 첫째 고양이는 늘 하던 야간 산책을 하기를 원했다. 너무 바빠 잠도 못자는데 안된다고 하려다가 아, 이게 마지막 날인데 싶어서 하던 일 중단하고 데리고 나가 줬다.
여전한 산책, 여전한 고양이. 늘 그렇듯이 주변에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며 안심하고 주위를 탐색한다.
뭐 볼 것도 없는 아파트 계단뿐인데도 매일 도장을 찍듯 주변을 꼼꼼히 냄새맡고 확인하며 영역관리를 하는 수컷 고양이. 이게 이곳에서 마지막 산책인지 얘는 알까. 모를까.
내가 그동안 이제 여기를 떠나서 멀리 갈 거라고 몇번이고 말을 해줬지만 그걸 알아들었을까. 마지막이라는 기분이 들자 웬지 산책하는 고양이 뒤통수가 아련하게 보였다.
첫째 고양이는 우리집에 와서 햇수로 8년 내내 이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이 아파트가 이 고양이의 세상 전부였는데, 여길 떠나서 얘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오늘도 어제처럼 다른 층 물건들 냄새를 맡으며 하루의 일정을 마감하는 내 고양이.
미안해. 네가 좋아하는 이 곳을 떠나게 되어서. 하지만 나는 너와 함께 하고 싶으니까 같이 갈 수 밖에 없어. 미안해. 이해해줄 수 있을까.
산책은 오래 지나지 않아 고양이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끝이 났다. 마지막 산책. 고양이는 이걸 기억할까.
보통은 산책 후 다들 잠을 자지만 오늘은 계속해서 나와 큰아들이 부산하게 일을 했다. 고양이들 역시 그 밤 내내 잠을 자지 않았다.
온 집안에 환하게 불이 켜진채 사람도 고양이도 다 움직이고 있던 시간들. 그때 고양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날은 뭘 아는지 왜 안자냐고 야옹, 도 하지 않았다. 매번 내가 안자고 있는 새벽마다 야오오오옹~~ 높은 소리로 날 불러댔는데.
산책을 마친 후, 잠시도 쉬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건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서 8시가 되어 현관 벨이 울렸다.
아, 아직도 짐정리를 다 못했는데 ㅠㅠㅠ 고양이들은 혼비백산. 제각각 달아나 숨어버렸다.
원래 낯선 사람이 와도 낯가리지 않고 잘 안숨는 둘째 고양이도 이사업체 아저씨가 6명이나 들어와서 와글와글하니 놀랐는지 숨을 데를 찾아 달아났다.
나도, 고양이들도, 준비가 되지 못한 채 이사짐 업체 직원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원래 내 계획은 이사업체 직원에게 방 하나를 먼저 치워달라고 한 후 그 방에 고양이 화장실과 먹이를 넣어주고 고양이들이 안정적으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사를 해보니 그건 너무 태평한 생각이었다. 짐싸는 건 그렇게 방 하나하나 느긋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후다다닥 진행되는 것인데다가 짐도 4종류로 구분되어 가는 것이다보니 고양이들이 숨을 공간이 없었다.
아,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 이 일을 어쩌지.
하지만 내가 고양이를 챙길 겨를도 없이 아저씨들은 빠르게 일을 시작해버렸다. 대문을 열고, 커다란 상자들을 가져오고, 마루에 천을 깔고…. 모든 일이 일사분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아저씨들은 각 방으로 흩어져서 빠른 속도로 짐을 포장하기 시작했는데 하도 빠르고 정신없이 진행되어 내가 분류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찌나 순식간에 짐을 싸는지 세간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상자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아니, 근데 그보다 먼저, 고양이, 고양이들은?? 온 집안이 난리인데, 대체 어디 숨어있는거지.
짐 구분이 끝나고 각방으로 흩어진 업체 직원들의 본격적인 짐싸기가 시작되자, 영리한 첫째 고양이는 어딘가 숨었다가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마루를 가로질러 안방 화장실로 뛰어 달아났다.
그리고는 화장실(이자 옷방) 선반 맨 윗 칸으로 들어가서 오돌오돌 떨었다. 나는 얼른 고양이 캐리어를 가져다가 가려주었다. 숨을 곳이 있어야만 하기에 뭐라도 몸을 가릴 것이 필요했다.
그래도 영리한 첫째고양이는 숨을 곳을 잘 찾아든다. 하지만 둘째고양이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딘가 방에서 마루로 튀어나간 후 찾을 수가 없었다.
짐을 싸느라 대문이 계속 열려있으니 혹시 밖으로 나간 건 아닐까. 고양이가 좀 멍청해서 살짝 걱정스러웠다. ㅠㅠ
큰 아이도 고양이가 아무데도 없다며 정말 이상하다고 하더니 혹시 나갔는지 자기가1층부터 17층까지 올라오며 계단을 찾아보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나니 정말 걱정되어 짐을 쌀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바삐 움직이는 아저씨들에게 바쁘실텐데 정말 죄송하지만 고양이가 없어졌으니 10분만 나가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아저씨들은 짐을 싸다가 말고 짜증스러울 만도 한데 알겠다고 선선히 다들 밖으로 나가주셨다. 나는 현관문도 닫아주십사 했다.
현관 문소리가 들려야 낯선 사람들이 나간 줄 알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이름을 부르며 집안 곳곳을 다니는데 고양이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장난감을 꺼내서 들고 딸랑거리고 다녔다.
평소 같으면 장난감을 만지는 순간 번개처럼 옆에 와서 앉아있었는데, 그래도 고양이가 나오지 않았다. 정말 밖으로 도망이라도 간 걸까.
허걱, 그러면 정말 어쩌지.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 마루 커튼 뒤에 숨은 고양이가 보였다. 아, 고놈 거기 숨어있었네. 탄식이 절로 나왔다. ㅠㅠㅠ 정말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얼마나 불안했을까. 거실에 있었으니. 낯선 아저씨들이 바로 앞에서 왔다갔다 해서 정말 무서웠을텐데.
나는 얼른 고양이를 안아들고 캐리어 가방 안에 넣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라 가둬야만 했다. 그리고 안방 화장실에 데려다 놓았다.
나는 가벼운 목소리로 아저씨들을 불렀다. 고양이 찾았어요~~~~. 하지만 아저씨들은 문앞에 안계셨다. 기왕 생긴 휴식시간. 담배 피우러 1층으로 내려가신 거다. 그동안 큰 아이가 들어왔다.
1층부터 17층까지 올라오느라 죽을 뻔 했다고 헉헉거렸다. 고양이 찾았다고 하니 잠시 짜증을 냈지만 (그럼 잃어버렸어야 옳겠냐 이놈아)
그래도 얼른 화장실에 가서 캐리어를 옷장 맨위쪽칸에 올려주었다. 더 높은 곳에 있어야 안심을 할 것이었다.
그리고 짐을 싸는 동안 간간이 잘 있나 확인을 했는데 정말 고양이들은 하루종일 숨은 곳에서 나오지도 않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놀랐을까. 살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갑자기 다 무너져내리다니. 하긴 거기 숨어있느라 무너졌는지 어쨌는지를 눈으로 보진 못했지.
그래도 낯선 침입자가 온 집안을 뒤집으니 정말 불안했을 것이었다. ㅠㅠㅠ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을텐데.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고양이와 파리가기]는 권승희 님이 작년 가을 고양이 두 마리를 포함한 가족과 파리로 이주하면서 겪은 일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옮겨 게재한 것입니다. 권승희 님의 블로그 '행복한 기억'(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dongun212)을 방문하면 더 많은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권승희 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