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사람은 얼굴 표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마음이 기쁜지, 슬픈지, 놀랐는지 얼굴만 보고도 알 수 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마음속에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그대로 나타난다. 얼굴은 심리 상태를 알려주는 흰 도화지와 같다.
개도 사람과 비슷하다. 개의 얼굴을 보면 대략적인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다. 눈, 입 꼬리 주변을 보면 된다. 그런데 개는 얼굴 이외에도 꼬리(tail)라는 확실한 보조 수단을 가지고 있다.
개가 꼬리를 맹렬히 흔들고 있으며 기다리던 존재가 왔거나, 밥이나 간식 같은 반가운 것이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개의 꼬리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개의 기분이 밝고 명랑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일 개가 자신의 꼬리를 가랑이 사이로 쏙 넣고 다닌다면 이는 그와 반대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의 입장에서는 무서운 동물이나 낯선 사람이 자신의 안전에 위협을 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하지 않은 상황이 일어난 것으로 보면 된다.
고양이도 개와 같이 자신의 얼굴 이외에 감정을 나타내는 보조 수단이 있다. 시끄러운 개보다는 훨씬 은밀한 동물인 고양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신체부위도 잘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개의 꼬리와는 다르다.
고양이는 마치 낚싯줄 같이 투명한 색깔의 수염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잘 보이지 않는 수염(whisker)으로 감정을 표현하니 관찰력이 뛰어나지 않은 성격의 사람이라면 고양이의 기분을 알기 쉽지 않다.
호기심 많은 새끼 고양이들의 수염이 앞을 향하고 있다. 2019년 11월 촬영 |
고양이에게는 좌우 양쪽에 12개씩 24개의 수염이 있다. 만약 고양이가 어떤 물건이나 동물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다면 그 수염은 앞으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고양이의 수염이 얼굴에 달라붙을 정도로 뒤를 향하고 있다면, 그 고양이는 정반대 상황이 빠진 것이다. 어떤 무서운 존재나 익숙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상당히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가 이런 상태라면 공격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괜히 그런 상태의 고양이를 만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손을 내밀다가는 고양이의 발톱 공세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 파악을 위해서는 고양이 수염의 방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샴(Siamese cat)의 수염이 뒤로 향하고 있다. 2019년 10월 촬영 |
고양이의 수염에 대해 흔히 사람의 머리카락과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체온을 유지하고 두피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고양이의 수염은 고양이가 바깥세상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는 감각기관(sensory organ, 感覺器官)이다. 전혀 다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세상을 파악한다. 고양이도 그렇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런 기관 이외에 수염을 통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고양이의 수염은 바람의 세기나 방향을 감지하고, 좁은 곳을 통과할 때도 나름 역할을 한다.
높은 담벼락에서 쏜살같이 달릴 때 필요한 균형감각도 제공한다. 고양이의 수직 이동에도 수염은 판단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니 고양이의 수염은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 미용 목적으로도 안 된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