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앤 해서웨이. |
[노트펫] 세상만사 쉬운 일은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워서 떡 먹기 같아도 팔을 걷고 뛰어들면 보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 속담에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라는 것도 있다.
세상의 중요한 이치를 담은 이 속담과 딱 어울리는 영화도 있다. 러닝타임 내내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누구나 동경하는 화려한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그것도 뉴욕에서 가장 화려한 패션디자인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호평을 받는 이유는 영화가 화려한 곳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영화 속 곳곳에서 보이는 작은 디테일들(details) 때문이다.
영화는 부유하고 화려한 삶을 사는 뉴욕 부유층들의 삶을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는 크게 높아지고 명작이라는 평가를 평론가들에게 받게 된다.
고양이를 두고 흔히 신(神)이 인간에게 보낸 선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양이도 디테일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하는 동물이다. 고양이의 강력한 경쟁력과 엄청난 매력은 작은 디테일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테일 중에서도 압권은 수염과 발톱이다.
고양이의 얼굴에 난 작은 수염은 크기와는 달리 매우 중요한 역할들을 한다. 고양이의 수염은 실용적 측면에서는 고양이가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가야할 지를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navigation) 역할을 한다.
고양이는 수염의 안내로 좁은 장소를 통과할 때 자로 재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고양이는 속도도 줄이지 않고 달릴 수도 있다. 이는 높은 곳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고양이의 수염은 고양이가 담벼락에서 전력 질주를 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수염은 미학적으로도 중요하다. 고양이의 미모를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수염은 마치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눈동자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인간의 눈에 고양이가 귀엽게 보이는 것에는 이런 고양이의 수염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의 발톱도 그렇다. 고양이는 높은 곳에 자유자재로 올라간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고양이의 강력한 발톱의 힘 덕분이다. 축구화의 스터드(stud)가 축구 선수들이 잔디구장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만들어주듯이 고양이의 발톱은 고양이가 높은 나무 위에 오르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 발톱의 힘 덕분에 고양이는 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동물로 차별화된다. 고양이는 개와는 달리 평면적인 동물이 아닌 공간적, 입체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양이의 수염과 발톱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기관 모두 고양이의 신체 끝 부분에 있고, 인간은 그 중요성을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은 그곳을 자진하여 자르거나 깎아내기도 한다.
인간은 면도칼을 들고 매일 아침 얼굴에 있는 수염을 깎는다. 수염의 역할이 사라진 인간에게 수염은 미관상 좋지 않은 불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발톱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발톱의 힘으로 나무를 오르지 못한다. 그런 일은 황당한 공상에 그치는 부질없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수염과 발톱은 인간의 기관과는 성격도, 차원도 다르다. 그리고 그 작은 디테일로 고양이는 경쟁력 있고 매력적인 존재가 된다. 이 정도 같으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의 사촌 속담인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라는 속담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