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고양이는 그 어느 동물보다 깔끔하다. 게으른 아이는 부모가 잔소리를 해야 아침에 일어나서 겨우 세수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깨우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몸속에 부착된 바이오 와치 덕분에 저절로 기상하고 주인이 시키지 않아도 앞발과 혀로 그루밍(grooming) 한다.
고양이가 하는 그루밍은 세수(face washing)와는 차원이 다르다. 신체 전체의 차림새를 단정히 한다는 그루밍의 사전적 의미를 고양이는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실천한다. 밤새 얼굴에 묻은 침 자국이나 눈곱을 떼는 수준의 사람이 하는 세수와는 격이 다르다.
그루밍 삼매경에 빠진 고양이, 2012년 촬영 |
깔끔한 동물인 고양이는 거리두기를 통해서도 청결함을 증명한다. 거리두기는 식당과 화장실이다. 고양이의 이런 특징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마당이 없는 아파트나 빌라보다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 적합하다.
필자가 키웠던 고양이 나비의 화장실은 화단이었는데, 그 중 최애 장소는 나무 아래였다. 화단에 가뿐히 오른 나비는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였고 이후 나무에 발톱을 몇 번 긁었다. 그 후 본론인 배변을 했다. 용변 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보물단지를 숨기듯이 흙으로 덮었다.
그런데 나비의 배변 후 행동을 고양이의 배변 습관이라고 일반화시켜서는 안 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장소에 따라 배변 후 처리가 같지 않다. 판이하게 다르다. 고양이는 자신의 용변 위에 흙을 덮을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만약 고양이가 변을 흙으로 덮으면 그곳은 고양이의 은신처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이 경쟁자나 적에게 노출되길 꺼려하는 게 고양이의 속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고양이는 싸움을 즐기는 싸움닭이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는 게 본능이다.
동물에게 용변은 냄새나는 지저분한 존재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널리 알리는 중요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시그널이다. 그러므로 자기 존재를 야생에 숨기기 위해서는 변을 땅에 묻는 게 좋다. 고양이의 이런 행동은 자신의 은신처를 보호하는 성격이 있다.
필자가 살던 집의 마당에서 변을 보던 길고양이가 있었다. 그 고양이는 용변 후 그 위에 흙을 덮어놓곤 했다. 마당을 자신의 영역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2017년 9월 촬영 |
고양이가 흙으로 변을 덮지 않고 이를 방치할 경우, 해당 장소는 그 고양이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만약 거리에서 고양이의 변을 보았다면 그곳은 변의 주인인 길고양이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일 수 있다.
용변 위에 흙을 덮는 것은 고양이 입장에서는 칼로리 소비가 적지 않고 매우 귀찮은 행동일 것이다. 그러니 만약 그곳이 고양이에게 의미 없는 곳이라면 굳이 시간과 정력을 기울여 변을 흙에 묻을 이유가 없다.
"돈이 되지 않는다면 일은 하지 않겠다"는 고양이의 평소 신조가 반영된 의도된 방치다. 고양이는 영역에 민감한 동물이다. 하지만 지킬 가치가 없는 곳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지랖이 넓지 않은 고양이의 평소 철학이다.
이렇게 고양이는 자신이 힘을 쓸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확실히 구분하는 실용적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