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동네 모든 고양이들이 나비로 불렸던 시절이 있었다. 나비는 고민 없이 붙여지던 고양이 이름이었다. 어린 시절 키웠던 고양이 이름도 다른 집 고양이와 같은 나비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집 고양이 나비가 왜 나비였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 없이 지어진 줄 알았던 나비라는 이름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부모님을 만나서 나비라는 이름의 탄생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축구, 야구, 배구, 농구 같은 인기 구기 종목은 높은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들이 활약하는 프로 스포츠다. 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구기 종목의 프로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인기 프로 스포츠는 권투나 레슬링 같은 격투기 종목들이었다.
체육관이 있으면 연중 개최 가능한 두 종목의 인기는 대단했다. 특히 권투 세계 타이틀전이라도 열리는 날은 동네잔치가 열리는 분위기였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해서 같이 응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경기 날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유제두, 홍수환 같은 우리나라 권투 챔피언은 아니지만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조지 포먼(George Foreman), 조 프레이저(Joseph William Frazier) 같은 미국의 거구들도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체중 100kg를 넘는 헤비급 선수들이 벌이는 타이틀전은 녹화중계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헤비급 핵주먹들의 경기는 볼거리가 많지 않던 당시 필자의 부친을 열광시키기엔 충분했다.
특히 아버지가 좋아했던 선수는 무하마드 알리였다. 알리는 복서라면 응당 가져야할 빠른 몸놀림과 강한 주먹은 물론 그 어떤 방송인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특유의 말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알리는 스타가 될 모든 조건을 갖춘 인물이었다.
무하마드 알리. 무하마드 알리 페이스북 |
아버지가 평가하는 알리는 “큰 것 한방을 노리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권투를 즐기는 선수”였다. 그래서 지금도 간혹 알리가 남긴 말을 한 번씩 하신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 그리고 그 후렴구로 따라 붙는 말씀은 “인생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는 오래 전 동네 공터에서 고양이가 마치 나비처럼 부드럽게 날아서 자기보다 훨씬 덩치 큰 개를 앞발로 툭 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그 장면에서 알리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고 떠벌렸을 때가 생각났고, 다음에 고양이를 키우게 된다면 반드시 그 이름을 나비로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렇게 나비라는 이름은 개성 없이 태어난 흔하디흔한 것이 아닌 권투를 그 누구보다 좋아했던 1970년대 한 권투팬이 가진 팬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편집자주] '나비'는 고양이들에게 매우 흔한 이름입니다. 윗집 아랫집 동네 고양이 대부분이 '나비'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나비'라는 이름이 흔할까 하는 의문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나비'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는 없는 상태입니다.'날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납'이라는 고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다소 지지를 받는 가운데 얼굴이 나비와 닮아서, 혹은 나비처럼 가볍게 몸을 움직여서 그렇다든지 등의 설들이 있을 뿐입니다.
2017년 한 누리꾼이 국립국어원에 나비의 어원에 대해 물은 적이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역시 시원한 답변은 내놓지 못했는데요. 하지만 북한의 평안북도 방언에서 고양이를 '나비'라고 부르고 있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최소한 이 지역에서만큼 나비가 고양이를 부르는 말로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 언제부터 고양이를 흔히 나비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기는 꽤 오래 전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