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11부
[노트펫] 대한민국의 여름은 화끈한 열기와 끈끈한 습기로 대표된다. 낮이 되면 태양은 마치 화로처럼 지상의 모든 것을 익힐 열기를 쉼 없이 뿜어낸다. 그 결과 땅은 푹 익어가게 된다. 장시간 달궈진 대지는 밤이 되어도 쉽게 식지 않는다.
해가 지고 달이 떠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한 밤의 열기는 대기 중의 습기를 후덥지근한 수증기로 변화시키면서 사람들을 더 견디기 힘들게 만든다. 낮에 비해 많아진 수증기는 사람들의 몸으로 깊이 파고든다. 누구나 숙면을 원하지만 에어컨이 없으면 쉽게 잠을 자기 어렵다. 이렇게 심야시간 기준 섭씨 25도 이상의 기온이 이어지는 밤을 열대야(tropical night, 熱帶夜)라고 한다.
사람은 주행성(晝行性) 동물이다.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 잠을 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기와 습도 때문에 잠을 자기 어려운 상황인 열대야에는 잠 대신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바삭하고 고소한 프라이드치킨에 생맥주 한 잔, ‘치맥’이다. 뿌리치기 어려운 강력한 여름밤의 유혹(誘惑)인 치맥 때문에 아이러니컬하게도 덥고 습한 여름밤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이도 있다.
요즘은 코리안 스타일인 치맥 대신 아메리칸 스타일인 피자와 맥주를 곁들이는 이들도 있다. 일명 ‘피맥’에 적합한 피자는 짜고 기름져야만 한다. 참고로 미국의 피자는 한국의 피자보다 더 짭짤하고 기름지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피자를 먹으면서 콜라 대신 맥주를 즐기는 이도 적지 않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도 많은 시대임이 분명하다.
치맥이나 피맥처럼 사람이라면 참기 어려운 유혹이 있다. 심지어 동물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다. 참새에게는 방앗간이 그렇다. 하지만 상인은 참새 같은 작은 새의 절도 행각에 관용적이지 않다. 가족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양식을 날짐승의 간식으로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방앗간에서는 참새의 입질을 막기 위해 낱알을 미끼로 한 간단한 덫을 설치하기도 했다. 덫에 걸린 참새의 운명은 비참했다. 매번 당하기만 했던 사람들의 간식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참새에게 방앗간이 위험하지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라면, 고양이에게는 그런 존재가 있다. 생선가게가 그것이다. 생선은 곡식보다 훨씬 강력한 냄새를 풍긴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에 비해 후각이 둔한 사람도 비릿한 생선 냄새를 멀리서 맡을 수 있다.
고양이는 비록 개보다는 처지지만 사람에 비해서는 7~10배 정도 예민한 코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멀리 떨어진 생선가게에서 풍기는 냄새는 배고픈 길고양이의 후각과 위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유혹이다.
예전 거리의 고양이들은 가게 좌판(坐板)에 깔아 놓은 생선을 호시탐탐 노렸다. 그러다가 가게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경계를 소홀이 하면 잽싸게 작은 생선을 물고 달아가기도 했다. 1970년대 부산의 재래시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유혹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꾀어서 마음을 현혹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끄는 행위”라고 풀이하고 있다. 물론 방앗간의 곡식을 노린 참새나 생선가게의 작은 생선을 노린 고양이의 행동을 유혹에 빠진 동물의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행동을 결코 심심풀이로 한 게 아니다. 그 동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생존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