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16부
[노트펫] 고양이 나비와 강아지 빠루는 싸우는 일이 거의 없었다. 먼저 시비를 거는 동물이 없으니 다툼은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였다. 흔히 개와 고양이의 사이를 견원지간(犬猿之間)에 버금가는 견묘지간(犬猫之間)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비와 빠루에게 견묘지간은 남의 집에서 만들어낸 말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평소 그렇게 사이가 좋던 두 동물도 단 한 번 큰 싸움을 벌여 주인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사람이 급히 와서 말려야 할 정도의 싸움이었다. 나비는 할아버지가, 스피츠 빠루는 필자가 꼭 끌어안으며 진정시키자 겨우 싸움은 종료되었다.
다툼의 원인은 불분명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나비에 비해 3배나 덩치가 큰 빠루가 일방적으로 당한 사실이었다. 빠루를 안아주었을 때 이미 얼이 빠진 상태였다. 나비의 연이은 냥냥펀치에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여러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면 둘의 싸움은 유년기를 벗어난 성체들의 서열 싸움이었다. 비록 종(種)은 다르지만 같은 집에서 같은 주인들과 살다보니 누가 대장인지 정하는 절차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둘의 서열은 확실해진 것 같았다. 빠루가 나비의 우선권을 인정해주면서 집안에서 더 이상의 분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비에게 당한 빠루를 진정시키기 위해 연신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가 개와 고양이의 싸움 실력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 생겨 할아버지에게 “아무래도 갯과동물은 고양잇과동물에게 싸움에서는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양이에 비해 덩치가 훨씬 큰 스피츠 견종이 당하는 것을 보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얘기에 야생 늑대를 직접 본 적이 있다면서 다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말에 늑대 한 마리는 양이나 염소를 잡아먹을 뿐이지만, 무리를 이루면 호랑이에게도 대적할 수 있다.”고 했다.
늑대 한 마리의 힘은 호랑이에게 도무지 미치지 못하지만, 여러 마리가 힙을 합쳐 앞뒤에서 호랑이를 포위하면 능히 대항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부연 설명도 해주었다.
북미의 자연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로키산맥 인근은 푸마와 늑대의 서식지가 겹치는 곳이다. 그래서 종종 두 맹수간의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참고로 늑대는 무리 생활을, 푸마는 아주 먼 친척인 호랑이와 같이 단독 생활을 하는 대형 고양잇과동물이다.
외로운 늑대가 푸마를 만나 일대일 시합인 일기토(一騎討)를 벌이면, 늑대는 개인 기량이 출중한 푸마에게 십중팔구 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푸마가 늑대 무리를 만나면 정반대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늑대가 두 마리만 되어도 한 마리의 늑대 힘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삼형제 중에 장남이다. 맏이부터 막내까지 나이차가 3살에 불과해서 어릴 적에 많이 싸웠다. 할아버지는 그날 평소 동생들을 잘 포용하지 못하는 속 좁은 장손을 늑대와 호랑이에 빗대 교육시킨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손자 삼형제가 싸우지 않고 서로 힘을 합치면 후일 못해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 같기도 하다. 손자를 따끔하게 혼내지 않고 동물이야기를 섞어가며 타이르신 할아버지의 은혜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