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지난 2018년 화창한 어느 봄날 아침, 미국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당시 친했던 지인은 옷소매를 걷고 상처투성이 손목을 보여주었다. 언뜻 봐도 곰과 싸운 것 같았다. 그 전날 커피를 하면서 여러 수다를 떨었기 때문에 그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했다.
신장 190cm, 체중 100kg의 건장한 체구의 소유자인 그는 직업 군인 출신이다. 또한 각종 무술에도 능했는데, 특히 러시아 무술인 삼보(sambo) 실력은 수준급이다. 그의 외모는 UFC 챔피언 같다. 도대체 누가 그에게 시비를 걸었는지 의아했다. “당신 괜찮냐?”고 했더니, 비로소 삼보 실력자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무용담이었다.
그는 고양이 두 마리의 집사다. 평소 고양이 사진을 수시로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일종의 자랑이다. 집도 고양이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게 손을 보았다. 언제든지 고양이가 마당에서 나가서 놀 수 있도록 문에 구멍을 만들었고, 곳곳에 고양이들이 놀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의 타워와 이동 시설들을 설치했다.
사고가 난 그 날 오후, 그의 말을 종합하면 대략 이랬다. 평소와 같이 고양이들은 마당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때 라쿤(Raccoon)이 등장해서 체격이 좀 작은 고양이를 공격했다. 외마다 비명 소리가 주인 귀에 들렸다. 그는 급한 마음에 맨발로 달려갔다. 라쿤도 물러나지 않았다. 라쿤을 상대로 삼보를 할 수도 없던 그는 맨손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라쿤은 생태계에서 중간 포식자, 만만한 동물이 아니다. 하지만 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 나선 주인도 물러서지 않았다. 시끄러운 싸움에 지인의 이웃들까지 손에 몽둥이를 들고 거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라쿤은 나무 위로 황급히 도망을 갔다고 한다. 고양이 집사는 부상을 무릅쓰고 라쿤과 싸운 것이다. 손에 있는 상처는 영광의 흔적이었다.
이야기를 듣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가 생각났다.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군인 일본군으로부터 부하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다. 전쟁영웅이다. 또한 달필이며 명연설가로도 유명하다. 대중의 마음을 휘어잡는 정치인으로 좋은 조건을 갖춘 셈이다.
대통령 취임 연설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膾炙)된다. 그 중 “조국이 국민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들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라는 구절이 유명하다. 지인은 그날 필자에게 자신의 행동을 통해 “고양이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고양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지 생각하라.”고 가르쳐 준 것 같았다.
그날 집에 와서 하늘을 보았다. 그날따라 하늘의 별이 초롱초롱 잘 보였다. 오래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너 하늘나라로 간 나비가 생각났다. 필자는 어린 시절 나비를 위해 단 한 번도 지인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싸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