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이 악물고 확대시켰습니다. 네, 전 확대범입니다."
어미에게서 떨어진 새끼 고양이를 '이를 악물고 확대시켰다'는 집사의 자백(?)에 수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짧고 강렬하면서도 자부심 넘치는 이 자백. 이런 자신감이 어떻게 생겼는지 집사에게 들어봤다.
친구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성격으로 이코치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영훈 씨. 얼마 전 고양이 관련 페이스북 커뮤니티에 가입 인사를 겸해서 고양이 '임자'를 소개하는 글을 게시했다.
자신 역시 소개했는데, "20년 9월 눈도 못뜨고 이소시키던 어미에게 떨어진 아이를 가슴으로 품어 딸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악물고 확대시켰습니다. 네 전 확대범입니다." 세 문장이 사실상 전부였다.
그리고 배수관 아래로 꼬리만 내민 아기 고양이부터 배수관 밖으로 꺼냈을 때 모습, 너무 어려 눈을 채 뜨지 못한 모습, 그리고 집사의 보살핌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다 마지막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고양이 사진을 함께 게시했다.
확대범이 붙잡혔다(?)는 소식이 들리면 항상 반기는 고양이 집사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아기 고양이 사진이 잇따라 나오다 훅 튀어나온 성묘의 모습에 화들짝하며 더 반색했다. 힘있게 느껴지는 단문에 확 자란 고양이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집사의 진한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1년 4개월 전인 재작년 9월16일. 서울 성북구 수유동에 사는 영훈 씨는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이날 새벽 2시50분쯤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이들 찰라 뿌엥하는 날카로운 새끼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들었다.
집 주변엔 길고양이가 많아서 처음엔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옮기는 과정에서 난 소리겠지 했다. 그러다 다시 길게 이어지는 "뿌에에에에에에엥" 뭔가 잘못돼 쥐어짜내는 듯한 울음 소리를 듣고 이불 밖으로 나왔다.
졸린 눈을 비비며 소리가 난 집 뒤편 에어콘 실외기쪽으로 가서 구석구석 살펴봤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고, 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다 몸을 일으키기 위해 배수관을 잡은 순간 "뿌엥" 소리가 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배수관을 흔들어 봤다. "뿌엥" 그랬다. 고양이는 배수관 속에 있었다. 배수관 아래를 보니 새끼 손가락 반토막도 안되는 꼬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아마도 배수관 윗부분에 들어갔다가 아랫 부분까지 흘러내린 것같았다. 배수관 끝부분이 바닥과 거의 붙어 있어 혼자 힘으로는 나오지 못했다. 배수관에 힘을 가해 녀석을 꺼내고 보니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까만 새끼 고양이었다. 이 녀석은 배수관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쓰러지더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원래는 어딘가에 걸려 있다면 꺼내주고 보내줄 생각이었는데 너무 어린 데다 기진맥진해 있었다. 배수관에서 떨어진 것이라 어미가 다시 돌아와 물어갈 것같지도 않았다.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모르고 지나갔으면 모를까 살려놨으니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불꽃같은 인터넷 검색으로 새끼 고양이 돌보는 방법을 찾았다. 목욕은 안된다기에 물티슈로 닦아주고, 계속 고개를 처박고 있길래 그 새벽 시간에 편의점을 찾아 급한 대로 고양이용 참치캔을 사다 먹였다. 생후 열흘이나 됐을까했지만 심하게 배가 고팠는지 양껏 먹었고, 활기를 되찾는 듯하더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렇게 냥줍의 새벽은 지나갔고, 그 뒤로 사료를 먹을 때까지 2시간30분에서 3시간마다 어르고 달래서 분유를 먹이는 생활이 시작됐다. 고양이의 이름은 특별하고 유일하게 지어야 오래산다는 말에 몇날며칠을 고민해서 '임자'로 지어줬다. 까맣기도 하고, 장수의 의미도 담겨 있는 '흑임자'의 '임자'다.
매시간을 맞추는 분유 먹이기에 트림하게 해주기, 배변 도와주기 등등. 이 정도도 그렇지만 이를 더 악물게 하는 사건이 얼마 뒤 일어났다. 20여 일이 지난 10월초 새벽 화장실을 사용하기 시작한지 2, 3일 되던 날 임자는 볼일을 보고난 뒤 갑자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깜짝 놀라 손을 뻗는 순간 임자가 갑자기 튀어 오르더니 난생 처음 보는 하악질과 덤블링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제껏 보던 임자가 아니었고 다시 살펴보니 항문은 열려있고 투명한 점액질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곧장 동네 동물병원에 가보니 새끼 고양이가 체온이 너무 낮다는 소견 뿐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했다. 그저 보온 팩위에 올려놓고 체온을 유지시켜줄 뿐이었다. 다른 병원을 알려달라 떼를 써서 병원을 옮겼다.
이 병원에서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너무 새끼라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했다. 혹시 몰라 진행한 범백(범백혈구감소증)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었다. 입원을 시키고 터덜터덜 집에 오는 길 잘못 돌본 것이 아닐까 자책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서는 임자가 입을 열고 하는 개구호흡을 한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입원실에 산소를 넣어달라고 하고 집에서 있다가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한 번 더 보자는 생각에 병원에 찾아갔다. 힘없이 수액을 맞으며 고개를 처박고 있는 임자. 이제 끝인가 싶어서 "임자"하고 조용히 불러본 순간 갑자기 임자가 깨어나 뿌엥뿌엥 했다. 집사를 알아본다는 생각에 드는 뿌듯함과 안타까움이란.
"아이가 잘 버텨준다. 살려는 의지가 강한 것같다" 수의사의 희망섞인 말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놀랍게도 퇴원해도 될 것같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새끼 고양이가 아프면 죽을 확률이 기본 40% 이상이라더니 금세 기력을 회복한 모습에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영훈 씨는 "구조하자마자 사경을 헤맨다니 멘붕이 오지 않을 수 없었다"며 "임자가 퇴원하고 바로 CCTV를 설치하고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맞춰주려 하는 이코치가 됐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그 뒤로도 일들이 없진 않았지만 이때 일을 겪은 후로는 임자가 자신의 곁에 오래도록 있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대처하게 됐단다. 임자도 무럭무럭 자라나 어엿한 성묘가 됐다. 매일 새벽 4시30분 어두운 방 안에서 두 눈만 번쩍이는 모습에서는 표범을 주워왔나할 정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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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 씨는 임자가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구하려 찾아와 준 것같다고 했다. 큰 희망과 함께 시작했던 2020년, 그러나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수많은 것들이 변했다. 프리랜서 직업을 갖고 있는 영훈 씨도 코로나19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생업은 힘들고 파트타이머로 살아가고 있던 때 그 새벽에 임자가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이었다.
영훈 씨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는데 임자를 구출하고 저도 더 열심히 살게됐다"며 "제가 임자를 구출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임자가 저를 구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자야, 내 우울한 삶을 바꿔주려 네가 날 구출한 거구나"라며 "아빠가 욕심 안부릴테니 건강하게만 함께 지내자. 고마운 내 딸 임자야"라고 무한 사랑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