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38부
[노트펫] 현대사회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종류의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한다. 직업은 마치 생명과 같아서 매일 같이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직업의 종류와 흥망이 연결되는 것은 이제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전은 그렇지 않았다. 흙을 일구는 농부가 절대 다수였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현대 한국 도시민의 DNA에는 농업, 농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말이 되면 작은 텃밭을 가꾸는 주말농장에서 땀을 흘리는 도시농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치 자신들의 조부, 증조부가 그랬던 것처럼.
산업화 이전 농부들은 기계가 아닌 생명의 힘으로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사람의 힘인 인력(人力)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규모 있는 농사를 위해서는 다른 동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체중 500kg의 소는 농부에게 주는 신의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 듬직한 수소 한 마리만 있으면 몇 배 넓이의 논밭을 가꿀 수도 있다.
당연히 당시 농부에게 소는 재산목록 1호였다. 집안 형편 때문에 농사일에 빨리 투입된 할아버지는 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셨다. 그래서 일 잘하는 수소는 장정(壯丁) 열 명 이상의 몫을 해낸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젊은 시절 아침에 일어난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쇠죽을 끓이는 것이었다. 일소가 배불리 먹어야 집안 식구들이 굶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농부라면 사람이 밥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소부터 밥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밭일을 나가기 전 할아버지는 소의 변을 보고 건강을 확인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변을 보면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게 할아버지의 지론이었다. 할아버지가 확인한 소의 변은 소중한 퇴비를 만드는데 사용됐다. 소는 이렇게 변도 버릴 것 없는 완벽한 동물이다.
할아버지의 동물 건강체크에는 소뿐만 아니라 개도 포함되어 있었다. 개는 당시 집안의 또 다른 보물이었던 닭을 지키는 용도로 키웠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일제강점기 당시 동물성 단백질은 매우 귀했다. 엄청 부잣집이 아닌 이상 매일 같이 돈을 내고 달걀을 구입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계란 하나씩을 가족들에게 아침에 제공하기 위해 닭을 키웠다.
닭은 냄새가 많이 난다. 그래서 삵, 너구리, 족제비 같은 중형 포식자들을 집으로 부르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이런 포식자들을 닭서리를 막기 위해 마당에 두 마리의 개를 키웠다.
그런데 문제는 그 중 한 마리가 자신의 것은 물론 다른 개의 변을 모두 먹어치우는 습관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밥을 충분히 줘도 고쳐지지 않는 그 개의 습관 때문에 골치 아팠다. 결국 그 개는 똥개라는 별명을 할아버지에게 얻게 되었고 평생 그렇게 불렸다.
할아버지는 이런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문뜩 마당에서 나비와 놀던 빠루를 보며 명견(名犬)이라고 칭찬했다. “그래도 빠루는 변을 보면 먹지 않는다. 대신 짖는다. 누구와는 달리 냄새나는 자신의 변을 주인이 와서 빨리 치우라고”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