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얼마 전 중고 가구를 샀는데 그 안에 고양이가 함께 달려와 깜짝 놀랐다는 중고거래 후기가 올라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들어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런데 이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생각보다 종종 일어나는 편입니다.
국악기의 하나인 대아쟁 속에 들어갔다가 얼떨결에 바깥 바람을 쐬고 돌아온 어린 고양이 사연도 그중 하나입니다. 국악연주자 위희경 씨 가족의 이야기인데요.
위희경 씨 가족은 지난 겨울 인사동에서 추위에 떨면서 앞도 못보고 울고 있던 어린 삼색 고양이를 데려와 키우게 됐습니다. 위희경 씨의 남편분이 구조한 녀석으로 희경 씨가 먼저 데려온 마루와 함께 살게 됐습니다.
희경 씨 가족은 이 녀석에 겨울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요. 집에 온 지 얼마되지 않은 지난 2월 겨울이가 갑자기 모습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나서 집안 곳곳을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고, 혹시 아무도 모르게 바깥에 나갔나 싶어 찬바람을 맞아가며 온동네를 찾아봤지만 허사였습니다. 겨울이의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죠.
날이 저물고 어두워지면서 어쩔 수 없이 돌아온 집에는 바깥 만큼이나 냉기가 흐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 안팎의 영상을 다시 돌려보면서 뜬눈으로 밤을 보내던 가족들은 문득 그날 악기를 차로 실어 보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대아쟁이었는데요. 10개의 현을 가진 대아쟁은 활대로 그어 소리내는 악기로, 현재 사용되는 국악기 가운데 가장 크고 낮은 음색을 가졌습니다. 종종 가야금과 비슷하게 생긴 대쟁과 혼동되기도 하는데요, 대쟁과는 엄연히 다른 악기입니다.
대아쟁은 가장 큰 국악기 답게 세워 놨을 때 길이가 거의 2미터에 달합니다. 그리고 대아쟁 뒷면에는 공명을 위한 두개의 작은 구멍과 20센티 정도 길이의 긴 공명구멍이 하나 더 있습니다.
희경 씨 가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밤중에 집을 나서 20km 떨어진 곳에 보냈던 대아쟁을 살펴봤습니다.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아 역시나 했지만 불을 켜고 공명판을 살펴보다가 구멍 한 곳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얼굴부터 삼색털이 어우러진 이 녀석, 겨울이였습니다.
바깥으로 실어보내기 전 대아쟁은 창틀에 세워져 있었다고 하는데요. 사람들이 짐을 실으러 들락날락하자 숨을 곳을 찾던 겨울이가 긴 공명구멍으로 들어갔다가 대아쟁 아래로 떨어지면서 갇혔던 것같습니다. 사람들이 그 상태로 대아쟁을 케이스에 넣어 실어 나르면서 이 사단이 난 것이었습니다.
희경 씨는 "옮겨가는 짐 안으로 숨어들어서 자그만치 20킬로미터를 이동했다"며 "도저히 들어갈 곳이 아닌데 고양이는 정말이지..."라고 기가 막혀했습니다. 길기는 하지만 폭은 너무나 좁습니다.
한편 희경 씨는 겨울이가 안보이자 고양이 커뮤니티에 어디를 찾아봐야할지 조언을 구했었습니다. 그러자 실종된 고양이들을 '집안에서' 찾은 경험들도 함께 공유됐는데요.
모니터 뒤, 에어컨 구멍, 냉장고 뒤, 씽크대 뒷편, 밝힐 순 없지만 어이가 없는 집안 어느 곳 등등. 고양이는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올 법했습니다. 겨울이 덕분(?)에 실내 실종 시 찾아봐야할 곳엔 악기도 추가됐습니다.
이제 집에 온 지 넉 달이 지난 겨울이는 오빠 마루의 보살핌 속에서 따사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덩치가 커지긴 했지만 집안에서는 막내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중입니다.
희경 씨는 "내 일처럼 생각해주시고 신경 써주신 여러분들 정말 감사했다"며 "우리 역사이자 전통인 국악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