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56부
[노트펫] 지금은 초등학교 앞에서 물건을 함부로 팔다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1970년대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 앞에는 하교 시간에 맞춰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상인들이 많았다. 물론 조악한 품질의 상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염가로 파는 이상 이는 당연한 이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장난감만 한 것은 없다. 하지만 몇 번 가지고 놀면 못쓰게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전 몇 개만 주면 살 수 있으니까 별다른 부담감을 갖지 않고 가방에 넣고 가기도 했다.
당시는 그런 아이들이 부러웠다. 물론 동전 몇 개는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 갈 때는 꼭 빈손으로 가라는 엄마의 말씀 때문에 그 동전들은 무용지물이었다. 항상 책상 서랍에 고이 잠들고 있는 신세였다.
초등학교 3학년 당시 친한 친구가 학교 앞에서 손으로 바람을 넣으면 신나게 달리는 말을 샀다. 그날 밤, 잠이 오질 않았다. 엄청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몰래 다음날 아침 주머니에 동전 몇 개를 넣고 등교했다.
하교를 하고 교문 앞에 모인 상인들을 쳐다보았다. 말 장난감을 판 상인이 보였다. 반가웠다. 하지만 그 반가움은 금방 실망으로 변했다. 그 장난감은 어제 다 팔아서 없고, 오늘은 다른 것을 팔기 때문이었다.
상인이 매번 같은 물건만 팔아서는 상대가 아무리 어린 학생들이라도 장사가 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파는 물건들을 조금씩 달리 하는 것도 생존을 위한 상술이다.
말 경주 장난감이 없다고 실망한 손님을 위해 상인은 오늘의 상품을 선보였다. 병아리였다. 개인적으로 사진이나 그림이 아닌 살아있는 병아리를 그날 처음 보았다. 다 큰 고양이 나비와 스피츠 강아지 빠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연약한 생명, 귀여운 외모, 보호 본능이 마구 솟았다. 주머니 속 동전 5개를 모두 상인에게 바치고 병아리 5마리를 봉투에 넣고 왔다.
집이 가까워지니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절대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나 물고기를 사지 말라고 얼마 전에 말씀 하신 게 또렷하게 기억났다. 일은 저질렀으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당연히 할아버지 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시장에 갔고, 할아버지는 집에 계셨다. 할아버지에게 창고에 있는 나무 박스들을 모두 해체해서 병아리 집을 만들자고 했다. 당시는 골판지로 만든 박스는 귀했고 대부분 나무로 만든 박스에 과일을 담았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말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다. 장을 보고 도착한 엄마는 기가 막힌 현실에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병아리 집을 만들고 계신 할아버지의 체면을 봐서 특별히 병아리 사육을 허락해주었다.
그로부터 두 달이 흘렀다. 마당의 병아리는 모두 자랐다. 닭이 된 것이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계란을 낳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에게 조만간 계란을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할아버지에게서 듣고 말았다.
“어제 네 엄마도 똑 같은 말을 했는데, 이 닭들은 모두 수탉이다.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암평아리가 없다. 감별사들이 감별을 하고 가격이 싼 수평아리만 학교 앞에서 판단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편집자주) 수평아리는 달걀을 낳을 수 없고, 성장 속도도 암컷보다 느려 경제성이 낮아 감별이 끝나면 대부분 살처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처분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면서 지난해 독일이 수평아리의 살처분을 금지했고, 일부 국가에서는 부화 이전 암수를 구별하는 기술 도입으로 살처분을 사전에 막으려 시도하고 있다. 과거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는 어떤 이유로 살처분을 면하고 외부로 흘러나온 수평아리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