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개와 함께 인간의 친구로 지난 수천 년 동안 입지를 굳건히 굳힌 동물이다. 그런데 두 동물은 사람과는 서로 다른 관계를 형성하려는 성향이 있다.
고양이의 영원한 라이벌인 개는 인간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선호하는데 비해, 고양이는 지금도 틈만 나면 야생의 세계로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고양이에게는 아직도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솔직히 말하면 고양이는 인간을 자신의 주인이나 동반자가 아닌 친구 또는 밥을 주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도 가지고 있다.
개들은 주인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개와는 달리 주인에게 적당한 관심만 가질 뿐이다.
개들의 경우, 주인이 20~30분 정도 자기를 안고 다녀도 아무런 저항 없다. 오히려 주인의 품을 더 파고든다. 하지만 고양이는 조금만 주인이 안고 있어도 밖으로 나가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영원한 충복 개와 같이 친절하지도 않고, 별로 성실하게 보이지도 않는 고양이에 열광하는 것일까? 솔직히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혹자는 이렇게 나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고양이는 신(神)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그분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주었다. “신이 호랑이를 애완동물로 줄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한편으로는 두려워하였고 한편으로는 존경하였다. 무시무시한 체구에서 나오는 엄청난 힘과 민첩성 그리고 용맹함. 호랑이는 한마디로 경외의 동물이었다.
사람이 감히 칼이나 화살을 들고 호랑이를 사냥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호랑이는 인간이 엽총을 만들고 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사냥이 가능하게 된 맹수였다.
호랑이에 대한 경외심은 호랑이를 상상 속의 동물인 용과 비교하게 만들었다. 용과 호랑이가 싸우면 막상막하(莫上莫下)라는 의미에서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사자성어도 생겼다.
호랑이는 표범과 달리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성향이 있다. 밤이 되면 자신의 영역에서 포효를 하며 주변 동물들을 벌벌 떨게 만든다. 호랑이와 같은 고양이과-표범속에 속하는 표범은 감히 그런 짓을 하지 못하다.
하지만 호랑이는 자기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고 포효를 한다. 일제 강점기 당시 강원도 도계에서 살았던 필자의 조부는 그런 호랑이의 포효를 밤만 되면 들었다고 하셨다.
그런 호랑이를 신이 인간을 위해 애완동물로 만들어서 준 것이 고양이라고 한다. 물론 이 말은 일부 애묘가(愛猫家)들이 그냥 지어낸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애묘가들의 말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우면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아래 글을 읽어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를 마당에서 키우면 재미있고 징그러운 행동을 많이 한다. 고양이는 자기 스스로 고양이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인간을 위해 새벽만 되면 다양한 먹을 것(?)을 준비해 주기도 한다.
고양이가 주인에게 아침 식사로 주는 메뉴에는 쥐도 있고, 새도 있다. 때론 벌레들도 있다. 이런 메뉴들은 모두 고양이 입장에서는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사람 입장에서는 아니다.
필자가 유년시절이었던 1970년대 당시 우리 국민 다수는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이 아닌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당시 우리집도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이었다.
그 전의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당시 키우던 고양이 나비는 남의 집에서 말리던 납새미라는 생선을 종종 물고 와서 부엌에 놓고 주인인 어머니가 올 때까지 야옹거리곤 했다.
[캉스독스의 동물세상] 고양이가 물어다준 납새미
어머니는 나비가 물고 온 납새미를 보고 “우리 나비, 오늘도 엄마 줄려고 납새미 물어왔네.”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나비는 자신의 등을 ‘역 V자’ 형태로 만들어 어머니 다리에 한번 쓱 문지르고 밖으로 나갔다. 고양이가 주인(어머니)에게 일종의 선물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고양이는 개들에게는 이제 많이 사라진 사냥의 본능이 살아 숨 쉬고 있다. 70년대에는 단독주택에 쥐가 많이 살았다. 그래서 집집마다 쥐약을 놓고 쥐를 잡기도 했다.
나비는 생선서리 뿐만 아니라 구서작업(쥐를 잡는 작업)에도 열심이었다. 나비는 자기가 잡은 쥐를 절대 먹지 않았다. 대신 주인을 위한 선물을 조달하는 차원에서 쥐를 잡았고 물고 다녔다. 나비가 물고 어머니에게 가져다 준 쥐는 한 달 평균 10여 마리 이상 되었다.
70년대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쥐꼬리를 학교에 제출하는 숙제가 있었다. 쥐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당시 나비 덕분에 그런 숙제에 대한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은 것 같다.
나비의 활약 덕분에 집에는 쥐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쥐는 고양이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공간은 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집에서 살던 쥐는 아마 옆집이나 그 옆집의 옆집 정도로 이사를 갔을 것으로 보인다.
나비는 어린 필자의 눈에는 덩치 작은 호랑이 같았다. 대단한 킬러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는 앞에서 마치 비호 같이 날아서 쥐나 참새를 잡은 적도 많았었다. 나비를 보면서 어린 시절 “호랑이도 아마 저렇게 사냥할 거야.”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이 정도 같으면 고양이는 신이 인간에게 호랑이 대신 준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과거도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