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와이프와 강아지 3마리 이렇게 우리 다섯 가족은 지인의 초청으로 경주의 한 호텔에서 묵은 일이 있었다.
때는 5월말, 바깥 활동하기에 참 좋은 날씨였다. 그런데 갈 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서울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아주 느긋하게 출발했다. 대략 오후 5, 6시쯤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
나들이 나온 차가 얼마나 많던지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체크인을 하려니 살짝 긴장되기 시작했다.
이 호텔은 강아지 동반입실을 허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미 호텔은 2박3일 일정으로 예약돼 있던 상황이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아주 안일한 마음으로 왔던 터였다.
그래서 밤 11시에 도착했을땐 보는 이들도 없으니 오히려 잘됐다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호텔 로비에서 그런 기대는 산산이 깨졌다.
체구가 작은 말티즈들이라 봄점퍼 속에 숨겨 도둑고양이마냥 엘리베이터로 향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 직원분에게 딱 걸렸다.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하나' '왜 안되냐고 진상을 펴야하나'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직원분이 사무실에 개를 맡기는 곳이 있다고 하는게 아닌가. '아 호텔은 이런 것도 잘 돼 있네'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 한 켠에 있던 철제장에 맡기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래서 잘 된 것인줄 알았다. 다음날 늦잠을 즐기고 있는데 갑작스레 방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너무 시끄러워서 업무를 볼 수 없으니 빨리 데려가 달라"는 호텔측의 전화였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더니… 그럼 그렇지…. 가보니 세 마리가 마치 감옥에 갇힌 것 마냥 울부짖고 있었다. 요녀석들 옥타브는 또 왜 그리 높은지. 직원들 볼 면목이 서질 않았다.
그날은 지인 부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우리 부부의 고민은 시작됐다.
어제처럼 사무실에 맡겨도 되는 것일까. 못 본 척하고 일찍 찾아가면 될 것도 같았지만, 세 마리 강아지들은 '제발 우리를 보내지마'라고 아주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단을 내렸다. 와이프는 호텔방으로 보내고, 나는 차 안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자기로. 강아지들은 내가 곁에 있어 다소 진정이 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이 좋은 봄날 놀러와서 그 안락한 호텔방을 놔두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하늘의 별들이 마치 한심하다고 비웃는 듯한 기분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
사실 개들을 데리고 어디 여행을 갈 때마다 흔히 겪는 일이다.
일전에 해남 땅끝마을에 갔을 때는 땅끝마을만 보고 자정에 바로 서울로 차를 돌린 적이 있다. 주말이라서 빈 방을 찾아 여러 곳을 헤매다 겨우 방 하나를 찾아냈다.
강아지 3마리를 본 주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데 때마침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고 우리는 가볍게 아웃당했다.
또 마산에 갔을 때는 여관 몇 곳에서 퇴짜를 맞은 뒤 아주 허름한 여인숙에 가서야 겨우 동반입실을 허락받았다. 위생상태는 별로 였지만 몸을 누일 곳을 찾은게 어디냐 감지덕지였다. 돈이 있어도 될 일이 아니었다.
사실 우리 부부가 무모했다. 개들을 받아주는 곳들이 따로 있는데 아예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묵으려 했으니. 경주에서 돌아온 뒤 한동안은 동반여행을 다니지 않았다.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신 뒤 여행을 재개했을 때는 반드시 동반입실이 가능한 곳을 찾았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면서 일반인들의 호의를 바라는 것은 자칫 실망과 분노만 키우는 일일 수 있다.
정당하게 동반비용을 지불하고 마음 편하게 이용하기를 권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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