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웨스티하우스’
[박은지 객원기자] 하늘이 뿌옇게 흐린 날, 가끔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도 제주도를 여행하는 데에는 시처럼 운치를 더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역시 날이 좋은 날, 그런 날 제주도의 오름과 하늘은 가장 아름답다.
제주도의 펜션 웨스티하우스에 도착하면 누구나 제일 먼저 푸르고 알록달록한 정원에 눈길이 한참 머문다.
독채로 세워진 통나무집은 그 잘 꾸며진 정원을 따라 쏙쏙 토끼집처럼 숨어 있다.
웨스티하우스는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펜션인데, 강아지와 산책만 해도 곳곳에서 인생 사진이 나올 것 같은 정원이다.
제주도에서 살아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실제로 제주도에서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는 이들 모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 바로 나무와 화초 관리라고 한다.
웨스티하우스에서 각 품종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귤과 귤 사촌(?)들을 관리하는 데 얼마나 공을 들일지 짐작이 갔다.
열쇠를 받으려고 사장님 내외가 계신 독채 앞에서 인기척을 내다가, 신발장에 놓인 상자에 하얀 털 뭉치가 담긴 걸 보고 신랑은 ‘백구다!’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그 상자 속에 담긴 뭉치가 꾸물꾸물 움직이며 고개를 반짝 들었다. 좀 꼬질꼬질하지만 하얀 고양이였다.
백구가 아니라 고양이잖아, 라고 웃으니 사장님이 나오면서 고양이를 번쩍 들어 정원의 돌 위에 올리시곤 얘가 모델 같다며 무심한 척 고양이 자랑을 하셨다.
한참 어르신들, 사실상 아저씨들이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걸 보면 (이런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참 귀엽다.
대놓고 물고 빨고 하는 게 아니라 툭툭 뱉는 말투로 은근히 예뻐하시는 게 느껴지니 "아무렴요, 고양이는 참 예쁘죠, 우린 같은 애묘인이네요"하는 반가운 동질감이 샘솟는다.
뜻밖의 공통분모를 발견하는 셈이다.
고양이 이름은 깜찍하게도 키티라고 했다. 키티는 목에 방울을 달고 그 넓은 정원을 돌아다니다가 사장님이 부르면 조르르 달려가는 모양이었다.
말은 안 해도 둘 사이의 애정과 신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 후에 반 년 정도 지나서 다시 제주도에 갔다. 한 번 갔던 숙소에 좀처럼 다시 가지 않는 편인데, 처음 갔던 기억이 참 좋아서 웨스티하우스에 다시 들렀다.
고양이는 물론 있었다. 그런데 예전보다 많이 마르고 어딘가 아픈 것처럼 보였다. 사장님은 한숨을 푹 쉬었다.
“얘가 하루는 밥 먹으라고 아무리 불러도 안 오는 거예요. 며칠 동안 안 보이는 거야. 누가 잡아갔나, 했는데 알고 보니까 덫 같은 데 잘못 걸려서 목에서 피가 철철 나서 돌아온 걸 병원 달려가서 겨우 살렸지 뭐예요.”
사장님이 고양이가 미운 듯 쳐다봤다. 목덜미를 헤집으니 목에 아직도 손가락 한 마디만큼 털이 나지 않은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흰 고양이는 자기가 집사의 심장을 덜컥 내려놓은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비큐 자리 옆에 와서 언제 고기 한 조각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방안에도 서슴없이 들어오는 이 붙임성 좋은 고양이가 얼마 전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무사해서, 그래서 참 다행이었다.
사장님은 속을 단단히 썩인 녀석을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키티야, 라고 이름도 부르지도 않고 바보라고, 단어가 집히는 대로 대충 불렀다.
그러면서도 바비큐가 끝날 때까지 사장님 방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고양이를 확인하러 몇 번이나 왔다 갔다 눈도장을 찍고 가시는 것이었다.
고양이는 우리의 저녁 식사가 다 끝날 즈음에야 방으로 돌아갔고, 다음 날 우리가 떠날 때도 느긋하게 해먹에 앉아 되돌아온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웨스티하우스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포토타임을 선사해주는 것도 여전했다.
오늘 하루 별 일 없는 것이 감사해야 할 충분한 이유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나무 집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볕에, 원하는 곳으로 떠나올 수 있었던 것에, 이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이곳에서 만난 기억 속의 흰 고양이가 여전히 백구인지 헷갈리는 비주얼로 손님들을 맞아주는 것에 일일이 조금씩 기뻐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