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오기까지 240일.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의 두려움과 공항에서의 탈출 시도 등등 어쨌든 일본에 오긴 왔다. 도쿄에서의 삶은 비교적 평온했는데,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무덥고 습해지는 초여름 어느날. 로라의 길고 풍성한 털은 여기저기 잔뜩 뭉쳐져 있어 제대로 빗질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 미용할 때가 왔구나.
동네에서 냥이랑 멍멍이들이 꽤나 드나드는, 친절하다고 소문난 펫숍을 찾아 예약했다.
ⓒ김민정 샴푸 중인 로라. 머리 위에 놓인 것 장난감 수박. 미용차 간 이 미용숍에서는 비포 / 애프터 사진을 꼬박꼬박 올려준다. 4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진을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
한국도 요새는 마찬가지지만 일본은 정말이지 예약 없이는 되는게 없는 나라이다. 미리미리 예약하는 것은 필수! 자전거 뒷자리에 이동장을 얹고 나는 핸들을 잡고, 딸은 이동장을 꽉 붙들어 잡고, 출발! 아! 도쿄에서의 집사 노릇은 몸으로 때워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간 곳은 펫호텔이 같이 있고, 트리밍과 스파를 받는 곳, 각종 사료와 장난감 등을 파는 곳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는데 단골들이 많은 집이라 했다. 분위기는 조용하고 침착했다. 카페에 온 느낌이랄까. 이보다 좀 더 규모가 크면 병원과 분양 코너도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시설만 놓고 보자면 스파만 빼고 한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 펫숍들의 간판엔 거의 모두 'PET-SPA'라고 씌여 있다. 펫스파가 우리보다 앞서 발달한 나라 일본에선 유명 휴양지에까지 반려동물용 스파를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고 한다. 물론 개 위주다. 고양이는 혼자서도 깔끔을 떠는데다 아로마 테라피가 좋지도 않다고 하니. 고양이는 소금 마사지 정도 받을 정도다.
뙤약볕과 추위에 불쌍한 길냥이 팔자는 뭐고, 여행에다 마사지까지 받고 사는 개나 냥이 팔자는 뭔지, 원. 전생에 주인 목숨이라도 구했을까나 팔자 한 번 늘어진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맞기는 한가보다. 약 2시간이 지나 로라를 찾으러 가니 '냥!'하고 반겨준다. 말끔하고 시원해 보이는 라이언 컷트. 가게 직원들이 가게 블로그에도 사진을 올려 놨으니 꼭 보라고했다.
블로그를 보니 샴푸 중인 로라와 컷트까지 마친 로라의 사진 아래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2미리 바리깡으로 단장한 여름 냥이 스타일!" "얌전하게 털깎기를 즐기는 냥이에게 딱 맞는 스타일!" 잉, 집안에서는 빗질도 잘 못하게 버둥거리는 로라인데 얌전하다고? 한국 냥이의 체면은 살렸군~ 했다.
ⓒ김민정 |
그 숍은 미용 전과 미용 후 모습을 찍어 블로그에 올려준다. 코멘트도 꼭 달아서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줬다.
그런데, 그 날의 모든 비용은 '무료'였다는 사실. 왜 무료로 해준다는 걸까. 우리 로라가 모델급이라도 되는건가, 아니면 처음 온 동물은 무조건 공짜인건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미용사가 무료라는 말 다음에 하는 말을 듣고 이해가 갔다.
미용을 하던 중에 피부에 살짝 상처를 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무료. 운이 좋았던 것인지 그 정도 상처라면 모른척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무료로만 끝나지 않았다.
미용사는 연고와 함께 병원 전화번호를 하나 주면서 혹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찾아가 보라고 했다. 치료비는 전액 다 미용실에서 책임지겠노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사를 가는 바람에 그 가게는 한 번 더 찾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 지금 미용을 하는 곳에서는 피부에 좋지 않다고 털을 아예 짧게 쳐주지도 않는다. 피부에 좋지 않아 못해주겠다는 그 고집 그리고 스스로 알아서 미용 실수를 알리고 책임지겠다는 그 서비스 정신 하나는 알아줘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