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다. 라봉이가 또 '그곳'에 들어갔다.
집사와 고양이의 숨바꼭질이야 어느 집에서나 벌어지는 흔한 일이지만, 보라 씨네 고양이의 은신처는 좀 색다르다.
집사가 사정을 해도 거부하는 화장실. 그 안에서도 물이 똑똑 떨어지는 세면대다.
이 유별난 취향의 주인공은 1년 10개월 된 브리티쉬숏헤어 남아 '라봉'.
이미 '섭지', '코지'라는 제주 지명을 딴 이름의 두 고양이를 키우던 보라 씨는 '(한)라봉'으로 세 번째 고양이 이름을 지으며 제주 세트를 완성했다.
이름 따라 기질도 변한다고, 혹시 삼면이 바다인 제주의 기운을 받아 라봉이는 물을 좋아하게 된 걸까.
집사 보라 씨는 라봉이 역시 다른 고양이들처럼 물이라면 질색이라고 전했다. 처음부터 세면대를 즐겨 찾은 것도 아니라고.
"눈 부시다. 불 끄고 나가라냥" |
"라봉이는 코지(사진 속 하양이)와 껌딱지예요. 그런데 코지가 중성화 수술을 하고 넥카라를 하고 오니 놀랐는지 하악질을 하곤 세면대로 도망가더라고요. 그날부터 세면대 사랑이 시작됐어요."
이후 라봉이는 낯선 사람이 오거나 청소기를 돌리는 등 놀라는 일이 생기면 세면대를 찾기 시작했다.
보라 씨가 보기에 라봉이는 세면대를 "가장 안전한 장소"로 여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라봉이가 세면대를 들어가니 껌딱지 코지도 세면대를 즐겨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동영상을 찍은 이날은 처음으로 세면대 합석이 이뤄졌다. 집사들은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동영상을 보면 장난기 많은 남자 집사가 수도꼭지를 잡고 "물 튼다"며 두 고양이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코지와 라봉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세상 편한 표정으로 가볍게 집사를 무시한다.
놀랄 일도 아니다. 집사들이 이용해 세면대가 젖어도 들어가 식빵까지 구울 정도로 라봉이의 세면대 사랑은 지극하다.
머지 않아 '섭지'까지 가세해 세 마리의 고양이가 세면대에 들어앉는 것은 아닌지. 집사는 심란하고 기대된다.
"섭지야, 코지야, 올라와. 여기 전망 죽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