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파스타 가게 별나다
부산에는 혼자서 몇 번 여행을 갔다. 혼자 하는 여행은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다는 점 때문에 좋았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문득, 부산 바다는 혼자 걷기 위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간판 불빛, 북적이는 사람들, 끊임없는 파도 소리, 그런 것들이 넘실대느라 온갖 감정이 흐드러져 피어있는 이곳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오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생각이 멀뚱히 떠올랐다.
그 다음 해쯤에, 처음으로 애인(지금의 남편)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관심사나 취미에 흥미를 보이는 척했지만 사실 스치지도 못한 채 살아온 30여 년의 시간만큼이나 서로 다른 점이 아주 많았다. 특히, 그는 고양이를 무서워한다고 했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바다보다 급한 건 밥이었다. 부산 중앙동에 있는 40계단 거리에 내가 그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밥집이 있었다.
40계단을 한 칸씩 세며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 자그마한 간판이 세워져 있다. 또렷하게 써진 ‘파스타’ 글씨를 발견하면, 정말 계단이 40개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배가 고파진다.
가게가 한눈에 보이지 않아 잠시 두리번거리면 골목 사이에 문득, 오랫동안 손때를 묻혀가며 잘 다듬은 듯 보이는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애매한 시간 탓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장님이 2층으로 우리를 안내하려다가 멈칫, 생각난 듯 물었다.
“아, 2층에 고양이가 있는데, 괜찮으세요?”
물론 부산 사투리 억양으로. 거짓말처럼 친숙하게 들리는 대사에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바로 이 ‘고양이가 있는 공간’.
그런데 막상 2층에 올라가니 고양이는 없고 고양이 사진과 먹다 둔 밥그릇, 물그릇만 보인다. 주문을 하며 ‘그런데, 고양이는요?’ 물으니 이제 1층에 있단다. 가게 안에서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언제 나타날지 궁금해하며 브리또와 파스타, 라씨가 세트인 메뉴를 주문했다.
식사를 하다 보니, 가게 1, 2층을 날렵하게 돌아다닐 거라고는 짐작하기 힘든 몸매로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 모습을 드러냈다. 고양이 이름은 ‘별이’라고 했다.
은근슬쩍 나타난 고양이 별이는 테이블 서너 개가 듬성듬성 채우고 있는 공간을 익숙한 듯 가로질러 걸어왔다. 그리고 우리 테이블 대각선, 빨간 방석이 놓인 의자 위로 올라가더니 그대로 편안하게 누워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늘 동물을 키웠던 나와 달리 고양이가 언제 공격해올지 몰라서 무섭다는 그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고양이 별이를 보며 긴장감이 다소 풀리는 듯했다.
달그락거리는 포크 소리, 실내가 조용하여 덩달아 소곤거리는 우리 목소리, 그 공간에서 고양이는 우리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깨지 않고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더불어 파스타는 여러 가지 재료가 듬뿍 들어가 맛이 정말 풍부하고 좋았다.
고양이가 있는 곳에 가는 게 꺼림칙하기는 해도 여자친구가 가보고 싶었다는 곳에 함께 가주고 싶은 다정한 남자친구였던 그는 ‘고양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마치 내가 좋아하는 친구끼리 친해질 수 있도록 만든 자리를 성공적으로 마친 주선자처럼 들떴다. 손님들에게는 한없이 무관심했던 별이는 ‘고양이는 공격적’이라는 그의 편견을 깨준 첫 번째 고양이 친구였다. 결혼 후 두 마리 고양이의 집사가 된 지금, 부산에 가면 꼭 다시 들러 그때의 추억을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