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 규제 사각지대 고등학교의 한 동물실험
비타민D 합성 보겠다면서 실험쥐 피뽑다 안되자 병원에 문의
미성년자 실험금지 법안 상정 불구 법 처리는 요원
"쥐에서 피 뽑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보고 해봤는데 막 발버둥쳐서 안되더라고요. 동물병원이니까 가면 피 뽑아주실 수 있는거죠?"
지난 8일 전라북도 정읍에 위치한 한 동물병원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근처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이었다. 난데없이 쥐의 피를 뽑아 달라는 이야기에 수의사는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학교에서 과학실험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학생이 속한 팀은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햇볕에 노출시키고, 다른 그룹은 암실에 둔 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각 그룹 쥐의 피를 뽑아 비타민D 합성의 차이를 보기로 했다고 했다.
햇볕에 노출되지 않을 경우 골다공증이 생기는지 여부를 확인하는게 실험의 목표였다.
실험결과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체내 비타민D 농도 측정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피를 뽑는 것이 필요했다.
제대로 동물실험 교육 받았을 리 없는 고등학생이 피를 뽑는다는 게 기가 막혔다.
수의사는 그래도 그러면 농도 측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물었다가 깜짝 놀랐다.
그 학생은 '알아보니 비용이 많이 들어서 쥐가 잘못 걷거나 뼈가 휘어지면 골다공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결국 쥐는 암실에 두고 원하는 행태를 보일 때까지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이야기였다.
이미 알려진 과학적 사실이므로 똑같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실험이 진행될 게 뻔했다.
이 수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게 실험동물 학대라는 생각은 안들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학생 측으로부터 대답은 없었다. 아마 생각지도 못한 질문 혹은 질타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동물실험은 갖추어진 시설과 인력 그리고 동물실험 원칙 준수 없이 하면 안된다' '학생들이 그런 준비없이 쥐 피를 뽑으려고 주사기를 쥐 목에다, 팔에다, 꼬리에다 찔렀다는 것은 잔인한 학대행위다' '실험 주제선정과 연구방법 모두 부적절하다'
수의사는 사실 학교나 교사, 교육당국에 할 말을 그 학생에게 모조리 쏟아 붓고 말았다. 학생은 "죄송합니다"라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지만 수의사는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수의사는 "이미 알려진 사실을 왜 생체로 실험하고, 동물 실험 환경과 인력도 원칙도 없는 상태에서 쥐를 가지고 실험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죽어 가는 어린 길고양이, 비에 젖은 어린 참새, 발가락 잘린 비둘기를 병원으로 데리고 오는 사람들 반 이상이 학생들"이라며 "학생들의 측은지심을 키워주고 칭찬해 주어야할 학교에서 동물실험을 방조한다는 것이 화가난다"고 덧붙였다.
실험동물법이 강화되면서 대학교 이상의 실험동물기관에 대한 규제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기 쉬운 미성년 학생들이 다니는 초중등학교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게 현실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미성년자들이 다니는 학원시설은 실험동물법의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단지 동물실험 원칙만 충족시키면 된다는 상식적인 원칙만이 있을 뿐이다.
대학교에서조차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데 지켜질 리가 만무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나마 교육부가 이같은 지적을 받아들여 지난 2009년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동물 해부 실험이 제외시킨 것이 전부다.
지난 3월 국회에서 19세 미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동물 해부 실습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자는 법안이 제출됐다. 하지만 법안 통과 시기는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