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밥을 먹거나 껌을 씹으면 자신도 모르게 침이 분비된다. 대뇌의 의지와 상관없는 반응이다. 음식물이 입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나오는 침은 별것 아닌 존재 같다. 하지만 침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 존재다. 침이 없으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생명체다.
침이 중요한 원인은 녹말(starch, 綠末) 때문이다. 녹말은 식물의 광합성 결과 생성된 포도당을 농축한 탄수화물의 한 형태다. 식물이 귀찮게 포도당을 녹말로 전환시킨 것은 미래를 위해 에너지를 녹말의 형태로 저장하는 것이 생존에 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식물이 녹말을 저장하는 곳은 주로 씨앗이나 뿌리다. 여기에는 인간의 대표적 영양 공급원이 포함되어 있다. 벼의 씨앗인 쌀, 국수와 빵의 재료가 되는 밀, 사람은 물론 가축 사육에도 필요한 옥수수 그리고 패스트푸드와 가공 식품의 재료 감자도 녹말의 형태로 저장되어져 있다.
침 속에 포함된 아밀라아제(amylase)는 치아와 턱의 활동 때문에 분해되기 좋은 상태가 된 녹말을 당으로 변화시키는 효소다. 아밀라아제의 활약 덕에 인간은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원인 당을 얻게 된다. 밥을 먹으면서 꼭꼭 씹어 먹으면 단 맛이 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육회비빔밥을 포함한 모든 비빔밥의 주역은 밥이다. 밥은 한국인의 영원한 소울 푸드, 2014년 진주에서 촬영 |
인간의 친구인 개의 상황은 어떨까? 개는 늑대의 후손이며 가까운 친척이다. 육식동물인 늑대는 먹이를 먹으며 아밀라아제를 많이 분비하지 않는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는 다르다. 인간과의 동행을 선택하며 자신의 먹이 상당 부분에 녹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는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 연구에 의하면 “개는 늑대에 비해 7배 정도 많은 아밀라아제를 분비한다.”고 전해진다. 개는 야생이 아닌 인간 세상에 살기 위해 그런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개의 변신을 진화(evolution, 進化)라고 감히 규정하고 싶다.
고양이의 사정도 비슷하다. 개가 녹말에 적응했듯, 고양이는 생선에 적응했다. 고양이의 고향은 북아프리카의 건조지대다. 그곳의 고양이 선조들이 물고기 사냥을 하고 이를 먹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인간 세상에 들어온 이후 고양이도 사람의 입맛에 적응하게 되었다. 인간 세상에 잠입한 설치류만으로는 고양이의 주린 배를 충분히 채울 수 없었다. 예부터 바닷가나 강가의 사람들은 생선을 즐겼다.
그것에 정착한 고양이는 선택의 여지없이 생존을 위해 생선을 먹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필자의 집도 바닷가였다. 생선은 가장 보편적인 식품이었다.
어머니표 생선구이, 2012년 인천에서 촬영 |
이는 고양이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어머니는 고양이의 아침밥을 챙기면서 늘 손으로 가시를 발라주셨다. 그 모습을 보며 하루는 “왜 아들이 먹는 생선의 가시는 안 발라 주냐?”고 심술이 동해서 항의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고양이에게 질투하는 큰 아들의 한심함에 어이없어 하시면서 “너는 손가락이 있어서 젓가락으로 가시를 바를 수 있다. 하지만 나비는 손가락이 없어서 그렇게 못한다. 목에 가시라도 걸리면 큰일이다.”며 답하셨다.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을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고 하는데, 어머니의 답변이 바로 그 우문현답이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