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13부
[노트펫] 집을 지키는 번견(watch dog, 番犬)에게 요구되는 기본적 덕목은 낯선 이에게 경계심을 갖는 것이다. 개들 중에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좋아서 꼬리를 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개가 있다면 안타깝게도 번견으로서는 부적합하다. 좋은 번견이 되려면 주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타인에게 엄격한 성격을 소유해야 한다.
스피츠종의 빠루는 번견이 가져야할 그런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에게는 애교를 부리지만, 낯선 사람이 접근하면 이를 드러내기도 하고, 으르렁거리기도 하고, 맹렬하게 짖어댔다. 하지만 필자의 집에 몇 번 놀러온 손님이나 주인이 다정하게 대하는 낯선 사람에게는 경계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영리했다.
그런데 빠루는 같은 주인이라고 해서 평등한 대우를 하지는 않았다. 필자 삼형제 같이 초등학생 주인과 어른은 차별했다. 특히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는 각별했다.
빠루는 필자가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면 대충 꼬리를 몇 번 흔드는 약식 환영을 했다. 마지못해 환영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퇴근하면 ‘저러다가 꼬리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격렬하게 반응했다.
어린 내가 빠루와 같이 놀아주는 시간은 아버지에 비해 몇 배 많았다. 하지만 빠루는 그런 은공(恩功)도 모르고 차별 대우했다. 초등학생의 마음으로는 이해가지 않았다. 서운했다. 손자의 불만이 누적되고, 빠루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같지 않자, 할아버지는 빠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동물이야기를 할 때는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는 지나친 의인화다. 동물을 동물의 눈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보고 분석하면 자칫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 해당 동물을 분석할 때는 잠시 그 동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일반화의 오류다. 몇 번의 독립적인 사건을 계기로 ‘해당 동물은 원래 그렇다’는 식으로 일반화 시키는 것도 위험한 분석법이다. 할아버지의 동물이야기는 그런 두 가지 오류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동물 중심적 분석이었고, 항상 가치중립적이었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사람의 입장이 아닌 빠루라는 개의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했다. 빠루에게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는 자신이 보호해야 할 주인이다.
하지만 필자의 아버지는 자신이 복종하고 지시를 받아야 하는 주인이다. 그러니 당연히 두 주인에 대한 빠루의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마음의 표현인 태도도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 빠루와 산책을 나간 사이 벌어졌던 ‘요강 도난’을 예로 들며 우리 집에서 빠루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빠루 덕분에 좀도둑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는데 ‘빠루가 감히 주인을 차별한다’고 서운하게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창피했다.
그 뒤에도 빠루는 똑같이 ‘아빠 바라기’를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미움을 어린 주인으로부터 받지는 않았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