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사삼각로(沙蔘閣老)의 권력이 막강하더니 / 지금은 잡채상서(雜菜尙書)의 세력을 당할 자가 없다”
광해군 시절 시중에서 아이들 사이에 유행했다는 노래다. 선비들이 은밀하게 지어 부르던 노래를 철없는 어린이들이 따라 부르다 널리 퍼졌을 것이다.
사삼은 더덕이고 각로는 지금의 총리급인 정승이니 사삼각로는 더덕 정승이라는 뜻인데 광해군 때 좌의정까지 오른 한효순을 일컫는 말이다. 상서는 지금 장관급 벼슬로 잡채 상서는 호조판서를 지낸 이충을 빗대어 부른 별명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한효순의 집에서 만든 더덕요리와 이충 집안의 잡채가 맛이 특별나고 독특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시중에서 유행한 노래는 두 사람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바쳐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 출세한 것을 비꼬아 부른 것이다.
한효순 집안은 요리 솜씨가 특출했다. 전해지는 말로는 서산 어리굴젓 역시 한효순 집안에서 담근 젓갈이 맛이 기가 막혔다고 하는데 더덕요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록에는 더덕 밀병(蜜餠)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밀병은 꿀로 만든 떡이니 아마 더덕을 까서 두드린 후에 찹쌀가루를 입혀 기름에 지진 후 다시 꿀로 버무린 더덕강정 같은 음식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광해군이 그 맛에 빠졌을 정도라니까 얼마나 맛있었는지 궁금해지는데 요리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인지 혹은 재료가 좋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더덕이 흔하지만 예전에는 인삼에 버금간다는 뜻에서 모래땅에서 나오는 인삼이라는 뜻으로 사삼(沙蔘)이라고 불렀는데 사실 맛도 보통이 아니다.
고추장에 재어놓은 더덕장아찌는 밥도둑에 가깝고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운 더덕구이는 씹는 맛이 쇠고기를 능가한다. 게다가 향긋하고 알싸한 향기는 인삼에 버금간다.
그렇기에 광해군도 더덕요리에 탐닉했던 것인데 인조반정으로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광해군은 처음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를 갔다. 그곳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 가시덤불로 담장을 두른 집에 갇혀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며 지냈다. 하루아침에 바뀐 처지가 비통했기 때문인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데 당시 광해군을 감시하던 강화별장이 목격담을 기록했다.
“광해가 하루 종일 밥을 물에 말아 겨우 한 두 수저를 뜰 뿐 다른 것은 먹지를 못해 기력이 쇠약해졌는데 언제나 목이 메어 울고만 있다”
비록 쫓겨난 임금이지만 인간적인 연민을 느낄 만도 한데, 유배지로 따라간 계집종이 쫓겨난 임금이라고 함부로 대하자 참다못해 광해군이 하녀를 꾸짖었다. 그러자 하녀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따지고 대들었다.
“영감이 일찍이 임금 자리에 있을 때 무엇이 부족해 염치없게 아랫사람에게 반찬까지 요구해서 심지어 잡채판서, 더덕정승에 국수감사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하였소”
잡채를 만들어 호조판서 된 이충과 더덕 요리로 총애를 받아 정승이 된 한효순, 국수를 별미로 만들어 바친 함경감사 최관을 두고 한 말이다. 하녀의 패악이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삽화: 김용민/ 비즈니스워치 |
“영감이 임금의 자리를 잃은 것은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라지만 우리는 무슨 죄가 있다고 이 가시덩굴 속에서 갇혀 지내야 한다는 말이오”
하녀의 악다구니를 들은 광해군이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 말도 못하고 탄식만 했다. 더덕이 그만큼 맛있었기에 광해군의 식탐을 유도했던 모양이다. 더덕으로 상징되는 부질없는 욕심이 무엇이기에 광해군을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트렸을까?
칼럼 연재
칼럼 완결
기행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