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들이 배고프지 않게 사료를 주는 것은 어디를 가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다.
그 논란은 비단 대한민국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외국에서도 토론 주제로 종종 등장한다.
길고양이와 스킨십을 하고 있는 모스크바 시민 |
필자의 어머니는 개,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시는 분이다. 8년 전 잠시 부모님은 몇 개월 동안 단독주택에 사실 때가 있었다.
당시 집 앞에 배고픈 고양이 두 마리가 저녁에 쓰레기통을 뒤졌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하신 어머니는 사료를 구해서 몇 알 건네주었다.
고양이는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다.
낯선 이와의 조우를 결코 환영하지 않는 부류의 동물이다.
하지만 배고픔은 그 동물에게 경계심을 풀게 하였다.
5분도 지나지 않아 고양이 두 마리는 어머니 옆에 와서 사료를 다 먹고 갔다.
24시간이 지난 다음날 저녁, 고양이 두 마리는 부모님 집의 현관문을 앞발로 긁어댔다.
고양이들은 어머니가 나올 때까지 긁고 울어댔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무시했다.
하지만 계속 우는 것을 그대로 참고 견디기에는 다시 측은지심이 발동하였다.
결국 어머니는 저녁식사 후 남은 생선조각을 들고 대문을 열었다.
어미와 새끼로 보이는 고양이와 새끼는 아무런 경계 없이 음식을 먹고 갔다.
물론 그 다음날에도 고양이는 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왔다.
어머니는 결국 4개월 동안 그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어머니가 아파트로 이사가기 전날까지 고양이들은 계속 왔다.
어떨 때는 한 마리만 오기도 했고, 어떨 때는 두 마리가 같이 오기도 했다.
먹이를 받아먹는 고양이들은 어머니와 친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먹이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오는 어머니에게 자신들의 몸을 문지르면서 먼저 스킨십을 하였다.
이 정도가 고양이가 인간에게 허용하는 최대한의 호의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도 먹이를 먹는 고양이의 이마나 몸을 쓰다듬어주었다.
필자가 재작년까지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는 배고픈 길고양이를 위해 매일 사료와 깨끗한 물을 주는 분이 있었다.
그 분은 늘 같은 장소에 사료를 놓아주었다.
그런 행동을 보면서 "정말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은 그 분의 고양이 먹이주기에 대해 아래와 같은 취지로 비판했다.
“그렇게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면 길고양이의 개체 수가 계속 늘어난다. 나중에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무책임한 이야기 같지만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쪽이 맞는 이야기라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과연 어느 분의 생각이 생명을 더 존중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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