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애견을 정리하며
12년째 해 온 애견숍을 정리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았다.
11월말로 미용은 중단했다. 숍에서는 쓰는 물건을 인터넷에 올리고, 각종 용품은 할인해서 팔고 하니 가게가 점점 비어가고 있다.
10년 넘은 세월을 돌아다보면 별별 일이 다 있었다. 그래도 꼽는다면 아마 인근 동물병원 원장님과의 인연을 단연 첫번째로 들 수 있겠다.
그 동물병원은 이 주변의 토박이에 가깝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돈 좀 벌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얼마 전 길 건너편에 한군데 생기고, 올해엔 바로 옆 건물에 24시동물병원이 들어서면서 고전 중이다.
한 해 배출되는 수의사는 500여명 안팎. 전부는 아니지만 젊은 수의사들이 사회에 나오면서 동물병원 간 경쟁도 엄청 치열해지고 있다. 이 동네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원장님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기가 키우는 동물에 대한 자가진료가 가능하다. 과거 수의사는 그다지 많지 않고 가축을 키우는 축산 농가에서는 당장 각종 치료를 해야 했던 사정이 있었던 듯하다.
사정이 어떻든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에 대해서도 이런 자가진료는 여전히 유효하다. 내 물건 내 마음대로 한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의식도 강해 보인다. 아직까지 법에서도 반려동물은 물건 취급이다.
어쨌든 하안애견 초창기, 그러니까 10년도 더 지난 오래 전 나는 가게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저렴하게 예방접종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 준 적이 있다. 자가진료에 대해 귀뜸해 준 것이다.
동물병원비는 예나 지금이나 보호자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서울 강남 지역에 개업한 이들은 진료비는 진료비대로 받으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비해 서울 강북 지역 수의사들은 진료비도 제대로 받지도 못하면서 비싸다는 툭하면 항의에 시달리기 일쑤다.
이것이 어떻게 그 원장님 귀에 들어갔다. 그래서 하루는 원장님의 호출을 받았고 저녁을 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솔직히 말씀드렸고 원장님과 나는 작은 약속을 하나 했다.
원장님은 분양을 하지 않는 대신 나는 반려동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을 조장하지 않기로 했다. 원장님은 이후 미용도 중단했는데 그 이후 미용도 우리 가게를 추천해 줬다. 대신 나도 동물병원에 갈 일이 있는 보호자들이라면 꼭 이 원장님을 추천했다. 서로간의 공존 혹은 공생 관계가 성립된 셈이다.
그 약속은 지금껏 오랫동안 지켜지고 있다.
우리 애견숍 쪽에서는 동물병원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동물병원은 하지 않는 사업이 없다. 사료야 그렇다치고, 용품부터 미용, 그리고 분양까지. 최근에는 훈련사가 해왔던 영역에 대한 수의사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하루가 몰라보게 성장하고 있다지만 아직은 뿌리가 단단하지 않은 반려동물 업계에서 공인받은 수의사 만큼 좋은 위치에 있는 이들도 없다. 수의사들간 내부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이런 지위를 활용하는 것은 심해지면 심해졌지 반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
동물병원 한 곳에서 모든 서비스를 받는 것은 보호자 입장에서는 더 편리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동물병원은 기본적으로 진료에 중심을 두고 있는 곳이니 다른 서비스가 발달할 가능성은 점점 작아진다. 물론 이것은 동네에 제한된 이야기다.
하안애견을 정리하면 한동안 몸을 추스리면서 쉴 생각이다. 혹시 다른 곳에서 애견숍을 다시 연다면 이 원장님과 같은 분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동종 가게들과의 공존에 대한 고민은 꼭 생각하면서 하고 싶다.
'우리동네 애견숍 24시'는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서 12년째 하안애견을 운영하고 있는 전광식 사장님의 경험을 담아낸 코너 입니다. 전 사장님은 모습은 다소 거칠어 보일지라도 마음만은 천사표인 우리의 친근한 이웃입니다. 전광식 사장님과 함께 애견숍에서 어떤 일들이 있는지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
*그동안 '우리동네 애견숍 24시'를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이번 회를 끝으로 칼럼은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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