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 베첼리오 <1488(?)~1576> 비너스와 아도니스, 1553년, 유화, 186×207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
남녀의 사랑은 항상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아니 실패한 사랑이 더 많겠죠.
많은 사람이 사랑의 실패로 애달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와 미소년 아도니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비너스는 연인 아도니스가 사냥터에서 멧돼지에 목숨을 잃자 저주를 퍼붓습니다.
“사랑하는 아도니스 그대가 죽었으니
나 사랑의 신 비너스는 다음처럼 저주의 예언을 하노라
앞으로 사랑에는 슬픔이 따르리라
사랑에는 언제나 질투가 함께하고
시작할 때는 행복하지만 끝은 불쾌하리라
사랑은 변덕스럽고 거짓과 기만에 뿌리를 두고
싹트자마자 단숨에 시들어 버리리라“ (셰익스피어의 장편서사시 비너스와 아도니스에서)
“정말 슬픈 사랑이었어” “그 때 주인님(아도니스)이 비너스의 말만 들었어도 비극은 없었을 텐데. 나라도 나서서 말려야 했었어.” “우리 멍이들의 잘못은 아니야. 우리는 주인님의 말씀을 어긴 적이 없잖아.”
비극의 현장을 시종일관 함께 한 목격자는 멍이입니다. 두 그림에 늠름한 멍이가 있습니다. 늠름한 사냥개는 충성을 상징합니다. 주인이 높은 지위에 있다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비너스는 아도니스에게 멧돼지나 사자처럼 사나운 맹수를 사냥하지 말라고 말립니다. 그러나 혈기 왕성한 아도니스는 멍이와 함께 멧돼지 사냥에 나섭니다. 도리어 성난 멧돼지에 사타구니를 찔려 숨을 거둡니다.
티치아노의 그림 ‘비너스와 아도니스’와 로랑드 라이르의 ‘죽은 아도니스와 그의 개’ 두 그림이 비극의 전말을 보여줍니다. 두 그림은 마치 연작처럼 보입니다.
앞 그림에서 두 마리 멍이(그레이하운드)는 사냥을 말리는 비너스를 외면하고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 듯 합니다. 시간이 흘러 한 마리 멍이가 멧돼지에 살해당한 아도니스를 지키고 있습니다.
로랑 드 라 이르 <1606~1656> 죽은 아도니스와 그의 개, 유화, 17세기, 파리 루브르박물관 |
새파랗던 하늘은 시간이 지나 약간 날이 저물었습니다. 아도니스의 붉은 옷은 쫒기다 벗겨져 있습니다. 충직한 하얀 점박이는 동료사냥개를 잃었지만 생을 마감한 주인을 지키고 있습니다. 50여년의 시차가 있는 두 그림이 마치 연속해서 펼쳐지는 상황처럼 느껴집니다.
소식을 듣고 맨발로 달려가던 비너스는 장미 가시에 발이 찔려 피가 났습니다. 원래 하얀색이던 장미는 비너스의 피로 물들어 빨간 꽃이 됐습니다.
빨간 장미는 비너스의 상징 꽃이 됐습니다. 비너스는 아도니스의 피에 생명을 불어넣어 아네모네 꽃으로 피어나게 합니다. 아네모네의 꽃말이 ‘허무한 사랑’이 된 사유입니다.
티치아노의 그림 왼쪽 나무아래에 사랑의 신 큐피드(에로스)가 잠들어 있습니다. 사랑의 종말을 예언하는 듯합니다.
큐피드는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너스의 남편은 불칸입니다. 제우스에게 번개창을 만들어 준 천하제일의 대장장이 신입니다. 큐피드는 비너스가 전쟁의 신 마르스와 사이에서 외도를 해서 낳은 아들입니다.
아도니스를 죽인 범인이 전쟁의 신인 마르스라는 설도 있습니다. 사냥개의 도움을 받는 훌륭한 사냥꾼 아도니스가 멧돼지에 당했다는 사실이 뜻밖이라는 얘기죠.
멧돼지가 개들과 싸우지 않고 아도니스에게 달려 들고 충성스럽고 날렵한 멍이들을 따돌린 점도 이상합니다. 또 멧돼지가 하필이면 사타구니를 찔렀겠느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냅니다. 질투에 눈이 먼 마르스가 멧돼지를 이용해 연적에게 복수했다고 의심할 만합니다.
마르스는 비너스와 바람을 피우다 들켜서 크게 망신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래 그림(불칸의 대장간)에서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비너스의 남편 불칸입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이 두 신의 밀회를 불칸에게 이르는 장면입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불칸의 대장간, 1630년, 유화, 223×290cm,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
아폴론은 하늘에서 숲속의 밀회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한 끝에 고민하다 사실을 알립니다. 불칸은 일부러 비너스에게 며칠 집을 비운다고 알립니다. 최고의 대장장이답게 침대위에 눈에 보이지 않으며 끊어지지 않는 강한 그물을 설치합니다.
불칸이 집을 비운 틈에 비너스와 마르스는 밀회를 즐깁니다. 불칸은 그물로 침대위에서 벌거벗고 있는 이 둘을 포박합니다. 제우스를 포함해 신들을 불러 망신을 줍니다. 망신을 당하고도 둘은 관계를 지속하는 와중에 비너스가 아도니스에 푹 빠진 겁니다.
비너스가 미의 여신으로 추앙받고,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사랑이 그림으로, 시로. 음악으로 계속해서 표현되는 이유는 뭘까요?
갈망에 대한 대리만족이 아닐까요. 셰익스피어의 시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19금 한 구절을 다시 인용해 봅니다.
“나는 뜨락이 되고 너는 내 사슴이 되어
산과 언덕에서 마냥 마음껏 먹어다오
내 입술을 탐해다오, 언덕이 메마른다면
더 밑으로 내려와 그곳에 누운 샘을 찾아다오“
육체와 정신을 다 쏟은 헌신적인 사랑,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 맺어지지 못한 옛사랑에 대한 추억. 현실의 삶을 중시하는 그리스인들의 세계관.
신에게 꿇리지 않는 인간의 모습. 여러 이유가 뒤엉켜 둘의 사랑이야기가 끝없이 새롭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멍이가 열정적 사랑의 현장에 있다 보니 이번 글은 좀 뜨거운 부분이 있네요. 다음에는 열을 좀 식히기 위해서 세상을 초연한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멍이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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