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수의사들을 포함해 많은 반려인들이 심정적으로는 그런 경험을 해 보셨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동물도 감정을 느낀다'는 명제를 증명하기는 극도로 어렵습니다. 사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도 과학이라기보다는 거의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질문이죠.
하지만 이런 난점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근대로부터 이어져 온 일반적인 의식들이 있습니다. '동물은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관념이나 '동물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것이죠.
이런 생각들은 심각한 경우 동물학대를 정당화하거나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는 반려동물을 잃은 보호자의 심리적 충격에 대한 사회적 공감의 결핍을 유발하곤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변화시키고 한 반려동물의 죽음이 다른 반려동물과 보호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수집하기 위해, 미국의 동물보호단체인 ASPCA는 반려동물 애도 프로젝트 (Companion Animal Mourning Project)를 가동합니다.
1995년에 시행된 이 프로젝트는 어떤 방식으로든 반려동물을 잃은 보호자를 대상으로, 반려동물의 죽음이 보호자 자신에게 미친 영향과 동거하던 다른 반려동물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조사합니다.
프로젝트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이 된 반려동물 보호자의 58%는 동거하는 다른 반려동물의 죽음 이후 반려동물이 보호자에게 좀 더 밀착하는 경향을 보였고, 조사 대상 가운데 70%의 고양이와 63%의 강아지는 울거나 짖는 소리도 달라졌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46%의 고양이와 36%의 강아지는 평소보다 식사량이 줄었으며, 전체적으로 65%의 반려동물은 평소와 행동이 달라졌으며 그 기간은 1달에서 최대 6개월까지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폴라 앤레더(Paula Anreder)는 많은 보호자들은 한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과정을 동거하는 다른 반려동물과 함께했으며, 이러한 과정이 남겨진 반려동물과 보호자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고 덧붙입니다.
물론, 한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해 다른 반려동물의 식욕이나 행동양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느낀다는 보호자 대상 설문 결과가 곧장 '반려동물도 슬픔을 느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엄밀한 근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ASPCA가 25여년 전 실행한 프로젝트는 반려동물이 아주 단순한 '동물들 중 어느 하나'에 불과하며, 감정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다른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해서도 반응하지 않을 거라는 보편적인 인식에 대한 도전이 되었죠.
우리나라의 경우 반려동물 문화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펫로스, 반려동물의 상실에 따른 보호자의 심리적 충격에 대한 연구와 사회적인 배려는 서구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비한 현실입니다.
과거의 문헌자료를 들춰보며, 아주 엄밀하고 과학적인 형태는 아닐지라도 국내에서도 펫로스에 대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행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양이삭 수의사(yes9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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