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를 소독제로 써도 될까
[노트펫] 다른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수의사들 가운데에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술자리에 나와야만 하는 상황인 경우, 흔히 듣게 되는 이야기들 중에 흔히 ‘괜찮아, 술로 소독하면 나아’ 또는 ‘술이 약이다’는 게 있었죠.
소독제와 약으로 친구를 도와주는 훈훈한 광경 |
술이 물과 알콜 (그리고 약간의 첨가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도 흔히 소독을 위한 물질로 알콜을 사용하는데요.
그렇다면 급한 경우엔 의료용 알콜 대신 술을 소독제처럼 사용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혹은 정말로 술이 소화기를 세척(?)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 세균과 바이러스 등 병원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결과, 알콜 (정확히는 에탄올)의 살균효과는 70%에서 극대화되며 40% 이하 농도가 되면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내에서 흔히 소비되는 소주의 경우 소독 효과로 말하자면 물이나 다름없고,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일부 지역에서 소비되는 극도로 독한 술이 아니라면 소독제로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맥주가 물인 건 알고 있었는데, 소주도 물이었다니... |
재미있는 것은 에탄올의 농도가 70%를 넘어 80%를 초과하게 되면 다시 살균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유효성분이 더 많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살균효과가 떨어지는 이유. 그 이유는 에탄올이 살균 효과를 나타내는 과정에 있는데요.
병원체(세균)과 접촉한 에탄올은 균세포의 표면을 뚫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세포의 내부에서 생명 현상의 기초가 되는 단백질을 응고시키게 됩니다.
여러 단백질이 응고된 세균은 더 이상 세포로서 제 구실을 할 수가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세균을 사멸시키는 효과를 나타냅니다.
세포 내부에 있는 구조물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
그런데 에탄올의 농도가 너무 높게 되면 미처 충분한 에탄올이 세포 속으로 흡수되기도 전에 세균의 표면 단백질부터 응고시켜버리게 되고, 응고된 단백질들이 방어막을 형성하여 에탄올의 침투를 막게 되어 살균효과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딱 떠오르는 대목이네요.
그러니 소주가 물에 불과하다고 해서, 너무 강한 술을 드시면 안 되겠습니다. 이상한 결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소독의 관점에서 본다면 틀림없이 맞는 이야기(?)입니다.
양이삭 수의사(yes973@naver.com)
칼럼 연재
칼럼 완결
기행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