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대학생 시절 대부분을 학교 기숙사에서 보냈다. 불타는 청춘인 20대 초중반 시절에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팠다. 그래서 밤 10시 기숙사 점호를 마치면 몇 명만 아는 ‘개구멍’을 통해 기숙사 밖으로 살금살금 나갔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24시간 감자탕 집에서 야식을 먹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그랬던 것 같다.
부모님의 용돈으로는 청춘의 야식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충분한 야식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학창 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했다. 그 결과 남에게 감자탕을 얻어먹은 기억은 거의 없고, 사준 기억만 많은 것 같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감독이나 시선을 피해 은밀하게 드나드는 통로를 ‘개구멍’이라고 한다. 그런데 접두어로 붙은 ‘개’는 반려동물의 대명사인 ‘개’를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쁘다’, ‘좋지 않다’ 정도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붙은 것이다. 아직도 귀여운 개를 왜 좋지 않은 뜻의 단어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수십 년 전 애용하던 비밀스러운 통로 ‘개구멍’이 지금 진짜 필자의 집에 존재한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다. 개구멍을 사용하는 주체는 ‘사람’이 아닌 ‘동네 개’로 바뀌었다. ‘개구멍’을 개가 사용하고 있다.
집과 집의 경계는 토지대장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계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므로 미국에서는 주로 펜스(fence)를 쳐서 구분한다.
펜스는 한 재질로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장 저렴한 것은 널빤지로 만든 나무 펜스다. 단점은 ‘약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약하다’다. 나무 펜스는 오래되면 이곳저곳 부서지고 망가진다. 이렇게 생긴 작은 틈을 이용하여 동네 개가 필자의 뒷마당으로 드나들고 있다.
고가의 펜스들은 알루미늄, 강철로도 만든다. 그래서 좀 사는 집을 가보면 입구의 펜스가 벌써 남다르다. 펜스만 보아도 위압감을 줄 정도로 튼튼하고 멋있다.
이웃집의 개가 드나들고 있는 개구멍 1. 2018년 4월 촬영 |
얼마 전 이웃의 개가 ‘개구멍’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 개는 몇 번의 움직임 끝에 자리를 잡고 변을 보려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황급히 뛰어나갔다.
그 개의 변을 몇 번 치워본 경험이 있어서 더 이상의 관용을 베풀기가 어려웠다. 개는 ‘끄응’하는 신음을 냈다. 불만 표시였다. 그러더니 줄행랑을 쳤다. 물론 처음에 들어온 ‘개구멍’을 통해 다시 나갔다.
그 개는 필자의 집 외에도 다른 집들의 뒷마당, 앞마당에 분비물을 생산해 놓고 그냥 가는 것으로 악명 높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자기 집 마당에서는 볼일을 보지 않는 것이다. 아마 변의가 느껴지면 밖으로 나가 마음 내키는 곳에서 변을 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웃집의 개가 드나들고 있는 개구멍 2. 2018년 4월 촬영 |
지금 사는 집이 필자 소유주택이라면 펜스 교체를 심각하게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기한을 정하고 임대한 주택이므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여러 ‘개구멍들’을 통해 그 개만 드나드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도 오고, 비버와 토끼도 온다. 어떻게 보면 ‘개구멍들’은 개와 고양이는 물론 각종 야생동물들을 소개하는 일종의 게이트(gate) 역할도 하는 것 같다.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같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개구멍에도 해당된다.
미주리에서 캉스독스(powerrange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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