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미국 남단 플로리다(Florida)는 북미 대륙의 파충류 중에서 가장 체구가 큰 미시시피악어(American alligator, Alligator mississippiensis)의 주요 서식지다. 그래서 도로 곳곳에는 악어 출몰을 경고하는 안내판들이 많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인들은 위험에 대한 주의나 경고는 지나칠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어디까지나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니, 이러한 지나침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악어의 출몰 때문에 수영을 금지하는 경고판. 2017년 12월 팜비치에서 촬영 |
그런데 미시시피악어들은 인적이 드문 에버글레이즈(Everglades) 같은 대규모 소택지(沼澤地, swamp)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악어들은 사람들의 유무와 관계없이 다양한 곳에서 산다.
악어들은 수천 명의 야구팬들이 즐겨 찾는 야구장 인근, 주택가 주변의 작은 연못, 골프장의 호수에서도 악어는 곧잘 출몰한다. 참고로 소택지는 에버글레이즈처럼 배수가 잘 안 되고 지하수 등의 물이 계속 공급되어 물이 풍부한 지형을 말한다.
한국에는 드물지만 미국 플로리다에는 이런 소택지들이 상당히 많다.
에버글레이즈국립공원 입구에는 미시시피악어 박제에 청바지를 입혀 놓고 포토존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7년 12월 촬영 |
플로리다의 소도시인 베로비치(Vero Beach)에는 필자의 친척들이 있다. 그 친척들은 올해 1월 필자를 만나서 “작년 봄에 악어가 이 빌라 단지에서 출몰하여 경찰이 출동해서 잡아갔다.”고 전해주었다.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는 일이지만, 악어에 익숙한 플로리다 현지 주민들에게는 애교 수준에 그치는 것 같았다.
친척들은 “플로리다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은 사람의 땅이 아닌 악어의 땅이고, 사람이 악어의 땅에 들어와서 같이 살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악어에 대해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다.”고 부연해주었다.
플로리다 주민들에게 초대받지 않는 친구처럼 익숙한 미시시피악어가 그렇다고 작은 체구와 귀여운 얼굴을 한 파충류는 결코 아니다. 성체 수컷 기준으로 미시시피악어는 5m까지 자라는 무시무시한 포식자다.
그런데 플로리다 생태계 최고 포식자인 미시시피악어의 번식 방법은 아프리카 초원의 왕자인 사자와도 비슷하다. 힘센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들을 차지하며 번식하는 일부다처제 방식이다. 힘이 약한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방법이 없는 셈이다.
미시시피악어도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작고 힘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2018년 1월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경내에서 촬영 |
그런데 미시시피악어의 암수 결정 방식은 특이하다. 대부분의 동물은 태어나면서 이미 성별이 결정되지만, 미시시피악어는 다르다. 부모가 아닌 태양이 결정한다.
에버글레이즈국립공측의 자료에 의하면, 암컷이 알을 낳고 부화할 때까지 둥지 주변 온도가 화씨 93도(섭씨 33.89도) 이상이면 알은 수컷이 되고, 둥지 주변이 화씨 86도(섭씨 30도) 정도면 암컷이 된다고 한다. 신기하고 기묘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미시시피악어는 태양의 정령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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