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제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스스로 성정하지 못한다. 부모나 혹은 다른 누군가의 은혜를 입어야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제 아무리 개구리가 되었다고 해도 올챙이 시절 자신을 보살펴 주신 분의 공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아닌 동물도 자신을 키워준 은혜를 기억한다. 그리고 행동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필자가 어릴 적 키웠던 고양이 나비는 전형적인 고양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이라도 적당한 심리적 거리를 두는 그런 고양이였다. 철없던 필자는 고양이도 개처럼 애교가 많고 다정다감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비는 그런 개냥이는 아니었다.
개와 고양이를 같이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가 있다. 개는 외출을 마친 주인이 귀가하면 자신의 온몸을 던져 격렬한 환영을 한다. 저러다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열광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그저 쓱 한번 자신의 몸을 귀가한 주인에게 문지르고 갈 뿐이다. 이렇게 개와 고양이의 환영 방식은 극과 극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고양이의 이러한 가벼운 터치가 개의 격렬함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후벼 판다는 점이다. 주인은 고양이의 무심한 것 같은 신체 접촉에 내심 더 열광한다. 이런 점만 봐도 고양이는 밀고 댕기는 기술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공원의 길고양이가 행인의 손길을 받고 있다. 2012년 필자의 지인이 러시아의 한 공원에서 촬영 |
초등학생이던 필자가 하교하면 하루 종일 마당에서 놀던 스피츠견 빠루는 전력을 다해 주인을 환영했다. 입은 옷은 빠루의 흰 털이 범벅이 되었다. 반면 빠루의 라이벌 나비는 냉정하게 인사했다. 딱 한 번의 “야옹”과 주인의 다리에 자신의 몸을 가볍게 스치듯 문지르고 가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비는 사람을 차별했다. 아침과 저녁으로 자신의 밥을 챙겨주는 엄마에게는 그렇게 냉정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비는 엄마가 귀가를 하면 마치 빠루가 하는 것 같은 행동을 했다. 느릿느릿하게 주인에게 다가오는 게 아닌 빠르게 달려와서 수차례 반가움을 표시했다. 특히 얼굴로 몇 번씩 문질렀다.
어릴 적에는 나비의 이런 차별이 싫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 생각하니 나비는 사람을 차별하는 게 아니었다. 나비는 생후 2개월부터 자신을 키워주었던 엄마의 큰 은공을 알고 그걸 매일 같이 표현하는 속이 깊은 착한 고양이였다는 사실을...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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