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49부
[노트펫] 아이들은 자기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몸을 숨길 곳부터 찾는다.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어릴 때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어머니에게 혼이 난 적이 몇 번 있다. 그럴 때는 방금 퇴근한 아버지의 등 뒤에 숨는 것이 안전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는 어머니의 뒤에 몸을 감추는 게 좋다. 그런데 숙제를 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해서 부모님에게 혼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이 일어나면 대략 난감해질 수도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숙제를 위해 문방구에서 학용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일생일대의 위험이 발생한 그날은 미술용 찰흙이 필요했다. 선생님은 집에 가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좋으니 찰흙으로 잘 만들어서 다음날 꼭 제출하라고 했다.
가방을 거실에 던져두고 집 근처 문방구로 가려하다가 문득 동전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귀가하면서 간식을 사먹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당에서 신문을 보던 할아버지에게 사정을 말하고 같이 가자고 했다.
문방구는 큰 길에 있었다. 다행히 숙제에 필요한 찰흙이 있었다. 그런데 문방구에서 집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골목길을 거쳐야만 했다. 솔직히 그 골목은 낮에도 으스스해서 다니기 싫은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골목에는 제법 큰 개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진돗개보다 더 커 보이는 대형견이었다. 무서운 마음에 할아버지의 등 뒤에 몸을 숨었다. 할아버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채신 것 같았다. “뛰지 말고, 내 뒤에 가만히 있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등 뒤에서도 으르렁 거리는 대형견의 소리가 들렸다. 귀에 거슬렸다. 다리가 저릴 정도로 무서웠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대단했다. 자신의 시선을 개의 눈에 고정시키고 몸과 손으로 손자를 보호했다. 그리고 개가 흥분하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였다. 할아버지의 침착한 대처로 무사히 골목길을 통과했다.
집에 와서 문방구에서 산 찰흙으로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문방구에 가기 전에는 며칠 전 신문에서 봤던 공룡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골목에서 뜻밖의 경험을 한 이후 마음이 바뀌었다. 평상에서 앉아 신문을 다시 보기 시작하는 할아버지가 작품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나를 지켜주는 덩치 큰 공룡이 아니라 할아버지이므로 이는 당연한 이치였다.
지금은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개에게 목줄을 채우고 산책을 한다. 그리고 배설물까지 준비한 봉투에 담아 치운다. 이는 일종의 문화 혹은 에티켓이 됐다.
하지만 1970년대는 달랐다. 견주가 산책을 시키고, 배설물까지 치우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심한 경우, 개만 집밖으로 풀어 놓기도 했다. 그런 개들은 아무 곳에 분변을 보며 환경을 훼손했고, 아이들을 더러 물기도 했다.
물론 이런 개들 중 예방접종을 마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당시 ‘개물림 사건’이 발생하면 그 피해는 아이들과 그 보호자들에게 전가되기도 했다. 아이를 문 개의 주인이 누군지 특정할 수 없으니, 책임 소재를 따질 곳이 불분명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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