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50부
[노트펫] 필자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제법 큰 카센터가 있다. 세차장을 겸하는 그곳은 시원한 물줄기를 매일 같이 내뿜는다. 요즘 같이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이면 최고의 동네 명당이다.
여름이면 폭포수 같은 물기둥 때문에 무지개가 떠오를 것 같은 그곳에는 볼만한 존재들이 있다. 아파트 숲인 도심에서 보기 힘든 당당한 체구의 대형견 두 마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큰 체격은 60kg, 작은 쪽도 50kg은 넘을 것 같다.
카센터 주인은 개가 손님이나 행인을 물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해서 카센터 뒤편에 펜스를 치고 개를 키우고 있다. 나름의 안전장치를 확실히 하고 개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그 대형견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무관심하다. 대신 자신과 동족(同族)인 개들을 보면 한두 번은 꼭 컹컹 짖는다. 대형견의 울음소리는 분명 “반갑다, 친구야”다 하지만, 그 주변을 지나가는 개들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 마치 호랑이를 만난 것 같은 반응을 보인다. 조금 전까지 잘 걷던 개가 주인에게 안아달라고 보채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한다. 어떤 개들은 주인의 발 뒤로 아예 숨기도 한다.
개를 포함한 동물의 대부분은 직접 싸워서 자웅을 겨루지는 않는다. 상대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소변 냄새만 맡아도 경쟁자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움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 무리하게 대항하지 않는다. 보스 자리를 양보하거나 저 멀리 떠나버리는 선택을 한다. 그게 하루라도 더 사는 법이기도 하다.
어릴 때 키웠던 스피츠견 빠루도 마찬가지였다. 빠루는 마당의 왕자였다. 호랑이보다 더 용맹한 천하의 맹수였다. 빠루는 낯선 인기척을 감지하면 일단 짖었다. 잠시 후 주인이 달래주어야만 포효(咆哮)를 멈췄다.
포효의 사전적 의미는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음’인데, 빠루의 울음소리도 그런 표현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빠루의 용맹함은 단 한 번의 산책으로 실체가 없음이 증명되었다.
할아버지는 초등학생 손자가 혼자 빠루를 데리고 동네 산책하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빠루와의 산책은 할아버지와 함께 했다. 빠루는 산책을 나가면 킁킁 거리며 온갖 냄새를 다 맡았다. 주인이 제지하지 않으면 냄새만 맡다가 해가 질 정도였다.
하지만 빠루의 정체가 탄로 난 날은 달랐다. 산책을 나간 지 3분도 되지 않아 빠루는 동네의 맹주라고 불렸던 아키타견과 마주하게 된다. 빠루는 즉시 집 쪽으로 산책 방향을 틀었다.
신기한 마음에 빠루를 안고 아키타견쪽으로 갔다. 주인에게 안긴 빠루는 아키타견을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고 애써 외면할 뿐이었다.
아키타견의 주인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빠루에게 “겁이 많구나.”라면서 길을 비켜줬다. 그런데 그것으로 빠루의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빠루는 낑낑거리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짧은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마당의 평상에서 앉아 빠루는 ‘안방 호랑이’라고 했다. 빠루의 용맹함은 주인에 대한 과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지 원래 용감한 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요즘말로 하면 빠루는 '안방 장비' 혹은 '방구석 여포'였던 셈이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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