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52부
[노트펫] 내가 어렸을 적 스피츠 빠루는 주인과 하는 공놀이를 좋아했다. 테니스공을 던져주면 번개 같이 달려가서 물고 왔다. 그리고 나름 예의를 다해 주인 앞에 공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공놀이를 계속하자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주인이 딴청을 부리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행동을 할 경우 빠루는 참지 않았다. 주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할 때까지 짖었다.
빠루와의 공놀이는 나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임해야 한다. 적어도 30분 정도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 정도의 운동이 빠루에게 딱 맞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마당이 아닌 밖에서 공놀이를 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공놀이에 빠지게 되면 빠루는 자신의 체력을 초과할 때까지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경우 공놀이가 끝나면 빠루를 집에까지 안고 올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초등학생에게 빠루는 만만치 않은 무게였다는 점이다. 할아버지를 쳐다봐도 할아버지는 봐주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런 빠루의 행동을 보면서 개가 잔꾀를 부린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빠루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결국 공놀이를 하고 땅에 완전히 퍼진 빠루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일은 빠루에게만은 한없이 마음 약했던 필자의 몫이었다. 필자의 품에 안겨서 집에 돌아온 빠루는 물을 한 사발 마시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마당에서 뛰어다녔다.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또 당했구나! 손자야”라고 약을 올리셨다.
5년 전 여름, 휴일이었다. 필자는 당시 북미 대륙의 한복판에 해당되는 미드웨스트(midwest)에 있었다. 미드웨스트의 여름도 한국처럼 덥다. 섭씨 30도를 넘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과는 달리 습하지 않다. 그늘만 찾으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당시 필자의 집에서 차량으로 20분 정도 가면 제법 큰 호수가 있는 공원이 있었다. 날이 더우면 가족들과 피서를 겸해 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름이 되면 호수의 주된 이용자는 사람이 아닌 개가 된다. 한국에서는 대형견이라고 해도 무방한 크기다.
사람과 개가 호수에 오는 이유는 공놀이를 하기 위함이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육상에서 공놀이를 하면 개나 사람이나 모두 고역이다. 하지만 호수에서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근본적인 규칙은 어릴 때 빠루와 했던 것과 같다.
하지만 사람이 공을 던지는 장소와 개가 주워오는 위치는 다르다. 사람은 발에 물을 묻히기 싫어한다. 더구나 나중에 차를 탈 생각을 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호수 바깥에서 공을 던진다. 반면 개는 그런 것은 따지지 않는 편이다. 개는 그저 시원한 것을 원한다. 그러니 주인의 공을 잡기 위해 물속에 첨벙 뛰어든다. 축구를 하다가 수구(水球)를 하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개는 평균 체온이 사람보다 높다. 더구나 온몸에 털이 덮여있다. 개의 신체적 특징을 이해한다면 잔잔한 호수에서 하는 공놀이만큼 좋은 피서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칼럼 연재
칼럼 완결
기행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