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55부
[노트펫] 할아버지와 함께 강아지 빠루를 데리고 산책하면 빠루의 리드줄은 할아버지의 차지였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도 리드줄을 잡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잘 허락하지 않았다. “너는 아직 어려서 돌발 상황이 일어나면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논리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빠루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보면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셨다. 우리 주변에 사람이나 다른 개가 지나가면 빠루를 자신의 몸 근처에 바짝 붙여서 그 어떠한 접근도 일어나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만남을 원천차단하려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저렇게까지 과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루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호기심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그런다고 했다. 만약 빠루가 사람이라도 물면 먼저 다친 사람에게 미안하고, 그 다음은 병원비를 내야하는 당신의 아들 부부에게 미안해질 수 있다고 했다. 빠루가 다른 개를 물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다친 개와 견주에게 미안하고, 가축병원(당시는 동물병원 대신 가축병원이라고 불렀다.)에 치료비를 내야하는 아들 부부에게 미안해지기 때문이라 했다.
할아버지는 평소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성격이었다. 일을 하면 몇 번씩 확인하고 점검했다. 그러니 할아버지가 신중하고 조심성 있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답변을 마치고 다른 말씀을 했다. 개를 100%까지는 믿어서 안 된다는 것이 이야기 주제였다. 개는 자신이 판단하기에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람들이 예상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어수선한 상황이 일어나면 자신의 개가 하는 행동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얼마 전 이웃의 개물림 사고를 언급했다. 사람을 문 개는 필자도 아는 친구의 개였다. 그 개는 작고 귀여운 외모와 온순한 성격으로 꼬마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사고 당일 친구의 집을 방문한 한 손님이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다가 갑자기 맹견으로 돌변한 개에게 오른손을 물리고 말았다. 그 손님은 병원에서 환부에 대한 소독과 치료를 했다고 한다.
필자는 그 당시 하루에도 그 개의 머리를 쓰다듬은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그 말씀을 드렸더니 “너는 이미 그 개에게 익숙한 존재여서 개가 위험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친 사람은 개의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본 낯선 이였다.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손을 들어 머리를 만지려고 하니 생존 본능이 발동해서 강하게 경계심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귀여운 개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별일 아니다. 하지만 쓰다듬기를 당하는 개의 입장에서는 매우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게 할아버지의 판단이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앞으로 모르는 개에 대해 신체적 접촉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람은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개는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사람은 사람의 입장에서 위험을 판단하고, 개는 개의 입장에서 위험을 판단한다. 그러니 그 위험은 다를 수밖에 없고 충돌할 수도 있다. 개의 돌발행동을 막기 위해서는 할아버지 말씀처럼 개를 100%까지는 믿어서 안 될 것같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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