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59부
[노트펫] 초등학교 3학년 1학기의 마지막 날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날은 학교에서 정상 수업을 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기쁜 단축수업을 한다. 방학식 날은 어머니에게도 간만의 휴식을 준다. 아이들의 도시락을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요즘도 옛날에 아침식사 준비보다 자식들 도시락 챙기는 게 더 힘들었다는 말씀을 한다. 자식이 먹는 도시락을 보는 눈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그날 오전 11시가 넘어 담임선생님의 연설이 끝났다. 연설의 주제는 간단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방학 때 놀지만 말고 공부도 하고, 물놀이 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무려 30분 넘게 하셨다. 선생님의 능력에 감탄하며 귀가했다.
집에 도착하니 할아버지는 여느 때와 같이 평상에 앉아 전날 신문을 보고 계셨다. 당시 구독하던 신문은 석간이어서 오전까지는 전날 신문을 보는 게 상례였다. 방학이 시작되어 기쁜 마음으로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자를 보며 할아버지는 “우리 똥강아지 왔구나. 오늘부터 여름 방학이지?”하셨다.
그런데 그 말이 그날따라 듣기 거북했다. ‘마당에서 꼬마 주인이 왔다고 꼬리를 흔드는 빠루가 똥강아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할아버지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짜고짜 “똥강아지가 뭐예요? 멀쩡한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되죠.”라고 따졌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화내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크게 웃으면서 “하지만 너는 영원한 나의 똥강아지다.”고 양보 없이 대답했다. 그러면서 당신의 옛날 얘기를 해주셨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마을 남자 아이들 대부분은 개똥이, 소똥이, 말똥이였다. 할아버지의 아명(兒名)은 소를 유독 좋아하셨던 증조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소똥이였다. 그렇다고 소똥이가 할아버지의 아버지인 증조할아버지가 작명한 것도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어릴 적 이름인 소똥이는 매일 같이 황소를 끌고 논으로, 밭으로 가서 일하는 증조할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동네 어르신들이 만든 것이었다. 동네 남자 아이들 이름이 죄다 똥 범벅이 된 것은 이름을 천하게 지으면 그 아이가 오래 살고, 후일 귀하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고종 황제도 어릴 때 개똥이라고 불렸다는 말씀까지 했다. “그래서 너는 영원한 나의 똥강아지다. 나는 소똥이, 너는 개똥이, 아니 똥강아지다.” 지금도 그 말씀이 선명하다. 그렇게 손자를 똥강아지라고 부르셨던 할아버지 덕분에 필자는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무탈하게 자랐고, 늙어가는 것 같다. 보름달을 보면서 돌아가신지 이미 오래된 할아버지 생각이 심하게 난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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