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60부
[노트펫] 어릴 적 키웠던 고양이 나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만의 루틴(routine)이 있었다. 부엌에서 마당으로 가서 먼저 체조 선수처럼 스트레칭을 몇 번 했다. 그러면서 밤새 쌓인 근육 내 젖산(lactic acid)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나비는 원하는 만큼 몸이 풀리면 마당과는 약간의 단차가 있는 화단에 폴짝 올랐다. 그리곤 제일 큰 나무로 가서 ‘시튼동물기’의 불곰 '왑'처럼 뒷발을 딛고 일어나서 나비는 나무 표면에 발톱을 갈았다. 고양이 때문에 나무의 겉면은 생채기가 가실 날이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주말이었다. 그날도 나비는 늘 하는 것처럼 나무에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할아버지에게 나비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 지 여쭤보았다.
할아버지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사자성어로 나비의 행동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유비’라는 말에 유독 강한 느낌이 왔다. 당시 ‘소년 삼국지’(을유문화사, 1973년 간행)를 열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비무환은 당연히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劉備)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 있게 “유비무환은 유비는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며 아는 척을 했다. 할아버지는 씩 웃으면서 “준비를 하면(有備) 걱정이 없다(無患).”라는 뜻이라고 고쳐주셨다.
손자의 무식함을 정정하신 할아버지는 얼마 전 있었던 사건을 애기해주셨다. 나비는 아침을 먹으면 고양이 세수를 하고, 외출을 하는 버릇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그런데 30분 정도 지난 후 검은 고양이에게 쫓겨 나비가 마당으로 황급히 몸을 피했다. 다행히 마당에는 스피츠 강아지 빠루가 있어서 검은 고양이를 단번에 쫓아버리고 말았다.
여기까지 말씀하신 할아버지는 개와 고양이가 싸움을 할 때 차이점을 설명해주셨다. 개는 화가 나면 입을 최대한 벌리며 무는 동작을 해서 상대를 겁주지만, 고양이는 앞발을 들고 상대의 얼굴을 때리는 시늉하며 겁을 준다. 고양이의 앞발 공격이 무서운 것은 날카로운 발톱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양이가 잘 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발톱이 날카로워야 한다.
여기까지 말씀하신 할아버지는 끝으로 “일요일 아침에도 나비가 쉬지 않고 발톱을 나무에 가는 것은 다시는 검은 고양이에게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라는 주관적 해석까지 해주셨다.
그런데 유비무환에 대한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해주신 할아버지는 손자의 엉뚱한 대답 이유를 궁금해 하셨다. 그래서 “유비에게는 관우, 장비, 조자룡 같은 용맹한 장수가 있고, 제갈량 같은 대단한 참모가 있으니 세상에 걱정이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아무리 훌륭한 참모들이 많아도 결국 지도자는 혼자 결정해야 한다.”면서 “당시 유비는 걱정이 많았을 것 같다.”고 손자의 의견에 대한 당신의 입장을 내놓았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직장생활을 하며 종종 생각이 났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참고용일 뿐 결정은 오롯이 본인이 책임지고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40여 년 전 할아버지에게 그 말씀을 듣던 열 살의 어린이는 ‘나비에게는 마치 장비 같이 용맹한 빠루가 있어서 좋겠다. 검은 고양이가 괴롭히면 빠루에게 가면 되니까’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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