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빠루] 제 61부
[노트펫] 제비는 매년 빠지지 않고 고단한 루틴을 행한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면 따뜻한 강남(江南)으로 가고, 다음 해 따뜻해지면 우리나라를 찾는다. 성인 남성의 한 주먹 밖에 안 되는 작은 체구로 어떻게 수천 km가 넘는 이동을 할 수 있는지, 제비의 강철 체력에 경외감이 든다.
오래 전부터 강남이라고 지칭된 곳은 서울에 있는 강남구가 아니다. 양쯔강돌고래(Yangtze River Dolphin)가 수만 년 이상 살았다는 양쯔강(揚子江) 이남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강남에 갔던 일부 제비는 지난 해 자신이 봄과 여름을 보낸 곳을 기억했다가 다음해 다시 그곳을 찾기도 한다. 물론 모든 제비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 개체가 그렇다는 뜻이다.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을 보낸 집에도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제비 부부가 와서 둥지를 틀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제비 새끼들이 놀랠 것을 걱정해서 제비 둥지 근처에도 가지 않는 등 각별히 조심했다고 한다.
필자가 어릴 때 살던 집에도 봄이 되면 제비 한 쌍이 왔다. 그런데 제비는 다른 곳도 아닌 현관 앞 외등 위에 꼭 둥지를 틀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둥지를 틀기에 비좁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찾아온 제비 부부도 그랬다.
하교 후, 제비 둥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할아버지에게 저 옹색한 장소에 제비가 왜 둥지를 틀었는지 물어보았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간단했다. “뱀 때문이다.” 이런 도시에 무슨 뱀이 있을지 황당했다.
할아버지는 “지금(1970년대 중반)은 도시에서 뱀을 보기 어렵지만, 수천 년 동안 제비의 몸에는 자나 깨나 뱀조심이 깊이 뿌리 박혀있다. 비록 손이나 발은 없지만 뱀은 자신의 몸을 나무에 칭칭 감으며 위로 잘 올라간다. 그래서 제비 같은 작은 새들은 뱀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을 찾아 둥지를 튼다.”는 말씀까지 했다.
당시 필자의 생각으로 새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뱀이 아닌 다른 동물들이었다. 마당의 양대 지배자 고양이 나비와 스피츠 강아지 빠루, 이 두 녀석이야말로 제비 부부에게는 진정한 위험이었을 것이다. 나비는 당시 심심하면 참새나 잠자리 같은 날짐승들을 물어다 현관 앞에 놓아두곤 했다. 심지어 빠루는 심지어 주인이 애지중지하게 기르던 병아리까지 한 마리 잡은 전과가 있었다.
할아버지도 두 녀석들이 걱정꺼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현관을 통해 실내로 들어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새끼 제비야, 제발 마당으로 떨어지지 마라! 어미 제비야, 새끼를 떨어뜨리지 마라!” 제비 부부에게 이야기 하곤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해의 제비 새끼들은 한 마리도 사고 없이 성체로 자랐다. 그리고 부모를 따라 따뜻한 강남으로 갔다. 고양이가 아무리 민첩하고 날래도 외등의 윗부분까지는 올라갈 수 없었다. 개와 비교하면 운동능력이 한 수 위인 고양이가 그러니, 스피츠견 빠루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외등을 육아 장소로 선택한 제비 부부의 혜안(慧眼)에 감탄할 뿐이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칼럼 연재
칼럼 완결
기행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