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밤 12시가 되자 에드푸 부두에 닻을 내리고 깊은 적막에 쌓입니다. 에드푸로 가는 동안 갑판에서 저녁 바람을 맞으면 나일강변의 사탕수수밭과 오래전부터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을 사람들의 일상을 보며 오후를 보냅니다.
19세기 나일강을 여행한 플로베르만이 아니라 2000년 이 곳을 여행한 서우라는 저널리스트도 여행기에 수천년간 변화없이 같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의 작은 마을과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남깁니다. 나일강변의 주요 도시인 카이로, 룩소르, 애스원 이외에 작은 마을은 시대의 변화와 무관한 시간을 사는지 모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일 만나고 대면하는 이웃과 나일강이 전부인 공간, 그들에게 변화는 그리 절실하지 않은 듯 합니다.
아침 6시 30분, 배에서 나와 마차에 오릅니다. 플로베르가 보았던 방울을 단 마차와 불쌍하게 인상지으며 팁을 요구하는 마부, 여기저기서 붙잡는 호객꾼까지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차이 없이 비슷하게 존재합니다. 마차에서 내린 곳은 에드푸 사원입니다. 거대한 석벽이 앞을 막는 위대한 건축물을 또 다시 만납니다.
이집트의 대부분의 사원은 지진이나 이슬람, 기독교도의 파괴 또는 기타 이유로 대부분 파괴된 상태에서 블럭을 맞춰 원형을 복원한 반면 에드푸 사원은 이집트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된 사원입니다. 그 이유로는 나일강에서 2km나 떨어져 있어 강의 영향을 덜 받았고 19세기 초 발견될 때까지 모래에 묻혀있어 안전하게 보존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보호하는 신인 오리시스를 모시는 사원으로 건물의 규모가 룩소르의 카르낙크 사원에 비해 부족하지 않습니다. 오리시스는 팔콘이라는 아프리카 새입니다. 이 전에 암보셀리에서 게임 사파리 할 때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벽면에 조각된 상형문자와 스토리를 가진 그림들은 거대함이 투박스럽지 않게 느끼게끔 섬세합니다.
거대한 벽은 사암블록을 쌓아 벽을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넣고 다시 날카로운 끌칼로 벽을 깍아 하나의 장식이 아닌 전체를 구성하는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실로 대단한 규모여서 입이 닫히지 않습니다. 이집트를 여행하는 동안 기원전 2,300~3,500년 사이의 시공간을 오가서 그런걸까요?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졌다는 말에 실망감이 앞섭니다.
그런데 이런 외진 곳에 무슨 이유로 그것도 파라오에 의해서도 아닌 신관들에 의해서 숨겨진 건축물들이 세워졌을까요? 이집트는 누비아의 쿠시왕조-앗시리아-페르시아-알렉산더와 그리스-로마-동로마-아랍-오스만-영국으로 이어지는 2,700여년의 긴 식민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대한 건축을 창조했건만 그들의 재능은 건축과 문화의 창달이지, 무식한 무기발명이나 비인간적인 폭력에는 재주가 없었나 봅니다.
2,000년의 유랑역사를 가진 유태인보다 더 오래 핍박의 세월을 보낸 민족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식민 역사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보통은 정체성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이집트는 핍박의 역사보다 300년이 더 긴 3,000년간 당 시대 최고의 문명국가를 유지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라지지않고 존재하지않나 생각됩니다.
문자와 문명을 가진 민족 중 자기 언어를 잃어버린 민족이 있던가요? 사라지거나 흡수되지 않은 채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독립국으로서 그런 나라가 있을까요? 그것 역시 이집트가 유일하지는 않을까합니다. 가이드에게 집요하게 질문하니 그도 고개를 절레 흔듭니다. 애석하고 반성할 일이지요. 아마도 문자와 언어를 잃어버린 대가를 치루느라 이집트는 후진국의 굴레에서 못 벗어나나 봅니다.
19세기의 플로베르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카이로에서 유명한 창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에스나라는 마을을 찾아갑니다. 에드푸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이며 나일강 크루즈 중 에스나-에드푸 구간이 가장 수채화 같다고 어느 여행가는 평하기도 했습니다. 플로베르도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에스나에 내려 어린 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쿠츠크 하넴’을 수소문합니다.
그녀는 ‘꿀벌의 춤’을 잘추기로 유명한데, 아마도 적나라하고 교태스런 춤이었을 것입니다. 춤의 내용은 꿀벌의 공격을 받은 무희는 옷을 벗을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랍니다. 아랍어로 꿀벌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하니 흥분한 여자는 옷을 벗는다는 그런 속뜻을 가진 춤입니다. 플로베르는 2명의 악사에게 눈을 가리고 연주하게 하고 그녀의 나체춤을 즐깁니다. 그리고 그녀와 깊은 하루 밤을 보내죠. 20대의 젊은이는 그 때의 감흥을 하나, 둘 기록으로 남겨놓았습니다.
하넴의 냄새, 그녀의 반응과 기교, 교태와 흥분했을 때의 소리, 심지어 숨소리까지.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와 여행기를 쓰며 그녀를 다시 떠올립니다. 그녀가 나를 기억할까? 그는 하넴이 자신을 기억해주기 바라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의 품에 있을 것이고 그 날 이후 자신을 잊었으리라는 허탈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고 합니다. “여행을 통해 우린 겸손해진다. 우리가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기 때문이다.”
한 명의 남자를 오늘 더 만났습니다. 플로베르 보다 좀 더 나이가 많은 동시대를 산 작가지요. 프랑스 작가 로베르토는 나일강을 여행합니다. 그리고 에드푸 마을에서 숨겨진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가 찾아낸 건 오늘 우리가 갔다 온 에드푸 사원입니다. 1850년 그가 발견했을 당시 모래에 파묻힌 사원은 값지게도 2,500년을 잘 견뎌 이집트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된 채 세상으로 나옵니다. 로베르토는 그 때의 흥분을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취미를 가진 남자로서 상상해봅니다. ‘나는 그대의 어깨를 살며시 쓰다듬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쓰다듬을 것이다. 너무 사랑해서 그것만을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일강 상류인 에드푸와 코옴보에 사원을 건립한 시기를 기원전 525년 앗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나라가 위태하고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이집트 전체가 식민지화된 시점입니다. 고왕국시대 이집트는 파라오의 권력이 막강했습니다. 중왕조의 혼란기를 지나 신왕국시대 파라오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고 신관 등 제사장의 권력이 막강한 시대입니다. 이들이 이집트를 지배하고 통치한 시대지요. 그들은 이집트의 미래를 보았을 것입니다. 점차 약화되는 이집트는 곧 사라지고 1953년이 되서야 독립을 할테니까요.
그래서 신관들은 좀 더 은밀하고 숨겨진 장소에 이집트의 우월환 문화와 문명을 후대에 알릴 신전 건립에 착수합니다. 그 시기는 앗시리아가 누비아의 쿠쉬왕조를 수단으로 몰아내고 그 뒤를 이어 페르시아가 성장하며 앗시리아를 대신해 이집트를 지배해가는 격변기인 기원전 6세기입니다. 미래를 내다본 대 제사장의 꿈은 2014년 2월 저 같이 평범한 사람도 발길을 한동안 잡아둘 만큼 되살아났으니 이집트의 위대함을 이룬 것이겠지요. 다시 마차를 타고 크루즈선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습니다. 식전 감동이 식욕을 돋구는 아침이었습니다.
9시가 되면 배는 코옴보로 향해 다시 출발하고, 오후 3시에 코옴보 부두에 정박합니다. 배에서도 널찍한 사원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코옴보 사원은 기원전 3세기 그리스계인 프톨레미우스 왕조 때 만들어진 사원으로 정면의 기둥부터가 그리스 양식입니다. 그 뿐 아니라 여러 신을 함께 모시는 그리스인의 의식이 반영된 듯 두 신을 함께 모시는 이집트에 유일한 사원입니다. 이 사원은 악어를 모시는 소빅신전과 팔콘을 모시는 하로이에스 사원이 하나의 건물을 둘로 나누어 건축되어 있습니다.
왜 악어고 팔콘일까요? 나일강엔 악어와 새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신이 되어버린 악어와 팔콘을 먹을까요? 먹는다는 군요. 그들은 믿는 신이 악어의 형상을 하고 팔콘의 형상을 했을 뿐이지 동물과는 무관하다고 합니다. 전혀 이해가 안갑니다. 인도 사람들은 시바가 타는 동물이라고 소를 먹지 않는 정도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숭배합니다. 신의 소유물이기 때문이죠. 나일강에 산 고대 이집트인들은 악어와 팔콘을 보았고 그들이 상상하는 신의 형상을 익숙한 동물에 매칭하였을 뿐 그 자체를 신으로 보지는 않는가 봅니다.
사원벽면엔 두 개의 상징적인 조각이 눈에 띕니다. 클레오파트라 2세고 다른 하나는 수술도구와 함께 새겨진 이모텝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클레오파트라는 클레오파트라 7세죠. 왕의 부인이란 뜻인 클레오파트라는 이름이 아니라 명칭이랍니다. 그녀는 그리스 왕실에서 유일하게 서민의 언어인 이집트어를 구사할 줄 알고 그 외에도 5개국어에 능통한 재능만점 여성일 뿐 아니라 로마의 힘으로 로마를 지배하려 한 당돌한 여성이기도 합니다. 이모텝은 영화 미이라에서 나온 대 사제입니다.
영화에서의 어두운 이미지와 달리 그는 이집트가 나은 최고의 천재입니다. 사재일 뿐 아니라 건축 엔지니어이고, 의사며, 과학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다양한 지식이 피라미드를 가능케 했으니 그야말로 이집트 최고의 천재로 봐야합니다. 당시 사원은 종교적 역할을 넘어 의술과 교육, 세금징수까지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합니다. 그런 환경에 가장 부함되는 인물이 이모텝이기도 합니다. 코옴보 사원을 나와 배로 돌아오면 크루즈의 종점이나 이집트의 끝 애스원으로 다시 향합니다.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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