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의 첫날이 시작됩니다. 총 11일의 첫 날, 인류의 어머니로 불리는 루시를 찾아갑니다. 제노 그래픽 프로젝트라는 게 있습니다. 전세계 35만명의 남자와 그만큼의 여자의 DNA를 수집해 DNA의 흐름을 따라가며 인류의 조상을 찾아내는 프로젝트입니다. DNA는 자연환경이 변화하면 이에 적응하려고 변화하지만 DNA를 만들어내는 공장인 미토콘드리아 DNA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의 유사성을 따라가는 경로이기도 합니다.
오랜 연구결과 남성의 DNA를 따라가면 Y염색체를 가진 어떤 남자가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나타나고 여성의 DNA를 따라가면 16만년 전 동아프리카 사바나에 살았던 여성이 그 흐름의 정점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10여일후면 현생인류가 태어난 사바나 대지를 40시간이나 달려보려합니다. 오늘은 이보다도 한참 위 조상인 루시를 찾아갑니다.
루시는 318만년전 비옥한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살았던 어느 여성입니다. 학명상으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며, 최초로 완벽하게 직립한 인류입니다. 물론 뇌 용량이 작아서 아직 동물과 인간세계의 중간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인간이 침팬치와 이별하고 300만년이 지나 벌어진 첫 현상은 직립입니다. 왜냐하면 루시는 아직 육식을 선택하지 않은 채식주의자입니다.
어느 방송국에서 젊은 남녀를 뽑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살기 위해 먹어야 했던 하루치 채소를 주고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실험했습니다. 그 양은 엄청나서 한 끼에 하나의 바구니에 가득입니다. 육식에 익숙한 보통의 젊은이가 먹기에는 너무 많아 3일이상 먹어야했습니다. 그러니 루시도 몸에서 필요로 하는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쉬지 않고 먹었을 것입니다. 육식을 하는 사자가 느긋한 낮잠을 즐기는 반면 초식동물들은 한시도 땅에서 머리를 들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먹어야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인류가 초식만을 고집했다면 이렇게 빠른 시간에 진화하고 문명을 일구지 못했을 것입니다. 육식을 선택하며 인류는 다시 변화를 합니다. 200만년 전 루시를 이은 새로운 인류 호모 에렉투스가 나타납니다. 훨씬 진화환 호모 에렉투스는 육식을 선택했을 뿐 아니라 보다 많은 단백질 섭취를 위해 불을 사용합니다. 이로 인해 뇌의 용량이 두 배나 커졌습니다.
그만큼 단백질을 많이 섭취했다고 봐야지요. 이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대륙 각지로 뻗처나가 독자적인 진화를 시작합니다. 180만년 전 화석으로 보이는 베이징원인이나 자바원인이 여기에 속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닙니다.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그 뒤로도 많은 시간이 흐른 기원전 16만년 전에야 나타납니다. 그럴지라도 인류의 최초의 어머니가 루시 인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루시화석은 우리가 찾아갈 다나킬의 하다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디스아바바의 인종박물관이라는 허름한 박물관 한 켠을 차지합니다. 거의 완벽한 원형이 전해져오는 화석 조각을 관 안에 진열해두고 일부 뼈들을 모아 살아있는 루시를 세워두었습니다. 실습나온 대학생에게 루시는 흑인일까요? 백인일까요? 어리석은 질문을 해봅니다. 두 명의 젊은이가 두 개의 다른 색을 짚습니다. “루시는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났으니 흑인이죠.” 다른 친구는 “원래는 하얄지도 모르죠. 그런데 햇빛을 받아 적응하느라 검어졌는지도 몰라요. 에티오피아는 햇빛이 강하거든요.” 318만년전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그런 먼 이야기 말고 좀 더 가까운 에티오피아 이야기를 찾아봅니다. 기원전 10세기경 존재했다는 솔로몬 제국과 시바 왕국이야기입니다. 그때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아보면, 성경에는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멀리서 시바 여왕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여러 어려운 문제를 냈는데 솔로몬이 모든 문제를 거침없이 풀자 그만 탄복해 가져온 향료와 선물을 잔뜩 주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선물로 하룻밤도 허락했겠지요. 둘간에 자식이 있었으니까요. 코란에도 그 때의 사건 기록이 있답니다. 솔로몬은 시바를 맞이하러 궁 앞까지 나갑니다. 시바가 궁으로 들어오려는 데 바닥이 물이라 치마를 거두어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솔로몬이 그건 물이 아니라 유리니 치마를 내리라고 했다나요. 이는 진리는 하나며 그것은 알라뿐이라는 뜻으로 통한답니다.
14세기 만들어진 “케브라 네가스트” 에티오피아 대 서사시에는 아주 재미난 이야기로 표현됩니다. 이 서사시에 따르면 솔로몬은 자신을 찾아온 아름다운 시바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같이 자기를 청했다고 합니다. 시바가 거절하자 내 물건에 손대기 전에는 절대 당신 몸에 접촉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합니다.
솔로몬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던 시바는 침범하지 않는 다는 서약을 받고 동침을 허락했겠지요. 그런데 향료를 잔뜩 넣은 저녁을 먹은 시바는 잠결에 목이 말라 물잔에 물을 따라 마셨고 이를 기다린 솔로몬은 내 물건에 먼저 손을 댔으니 나도 약속을 어기겠다며 여왕을 밤새 품었답니다. 그래서 태어난 게 메넬리크 1세입니다.
여왕은 고향인 예멘으로 돌아간 후 아들이 성장하자 아버지를 알려주었고 아들인 메넬리크는 솔로몬을 찾아갑니다. 저승갈 날이 얼마 안 남은 솔로몬은 아들을 극진히 대해 유대사회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인 하나님의 언약궤중 하나를 메넬리크에게 선물합니다. 물론 많은 재물과 여러 분야의 전문가도 딸려 보냅니다.
메넬리크는 고향으로 돌아와 홍해를 건너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 바로 악숨왕국입니다. 우리 일정을 보니 다나킬 분지에서 나오면 악숨으로 이동해 하룻밤을 자고 아침 비행기로 곤다르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밤에 도착했다 아침에 가니 머물기만 합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이야기가 가장 많은 악숨을 이렇게 지나쳐야 하다니요.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때 우리를 도와 군대를 파견한 형제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비록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군대였다고 합니다. 그런 용맹성은 이미 제국주의 시대부터 나타납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독립국으로 남은 나라입니다. 물론 수단도 마흐디왕국을 건설했지만 결국 영국 통치령이 되었습니다.
반면 에티오피아는 침략해오는 이탈리아군을 물리쳤고 다시 군대를 정비해 대군과 신무기로 무장해 쳐들어오는 이탈리아군을 다시 물리쳐 2차대전 때 이탈리아에 잠시 점령되기까지 거의 유일하게 독립국으로 존재합니다. 물론 2차 침공 때는 영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었지만 창과 독침, 전쟁 부산물로 획득한 간단한 총기류로 무장한 군대가 현대화된 이탈리아군을 물리쳤으니 이들의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시내 이곳 저곳을 서성이며 아디스아바바의 첫밤이자 마지막 밤을 맞이합니다. 점심에는 멋진 식당에서 전통식인 인제라를 맛보고 저녁에는 중국식당을 찾아 오지로 들어가기 전 만찬을 즐깁니다. 그러면서 느낀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얼굴이 작고 몸집도 작다는 것입니다. 콧날이 오똑하고 얼굴도 그리 검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미인들이 사는 땅입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침입한 셈계는 메넬리크가 악숨왕국을 세운 이후에도 특히 이슬람 시대에 많이 건너왔습니다. 이집트 함계 역시 이집트가 남으로 팽창해 수단을 정복했을 당시부터 적지 않은 사람이 에티오피아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니 흑인과 백인의 혼혈국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에티오피아를 오래 전부터 “아바시니아” 즉 혼혈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다나킬분지로 떠나는 시작점인 메켈레로 비행기를 타고 달려왔습니다. 가장 좋다는 4성급 호텔은 중국이 지어 중국 시골의 호텔에 온 듯합니다. 그래서 깨끗하고 편안한 시설은 인정하지만 중국이 지배하는 질서가 이 먼 오지까지 착착 정착된다는 게 그리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시장에 가며 두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아이들한테 돈이나 초콜렛을 주지 않는다. 물건값을 깎지 않는다. 물건값을 깎으면 그 물건의 가격을 알 수 없게 됩니다.
이집트에서 거의 80~90% 물건값이 내려가는 현상을 보면서 이건 성공적인 거래가 아니라 아픔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기 위해 말도 안되는 금액까지 내리는 상인의 마음을 훔치는 일이기도 하고 상인은 깎일걸 알고 몇배나 높게 불러 정상적인 가격이 사라지는 참으로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때묻지 않은 세상에 일부러 흠집을 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들이 따라오면서 관심을 보일 때 악수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돈을 주거나 먹을 것을 주면 호의가 구걸이 되니 애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무장하고 간 시장은 쓸쓸했습니다. 중국 저가 상품들이 한 칸 한 칸씩 늘어가고 전통상품은 서서히 자리를 비워주는 과정이었습니다.
시장을 나와 커피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자랑이듯, 카페에서는 직접 숯불에 원두를 굽고, 구운 원두를 절구로 찧은 후 도기에 물을 끓여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줍니다. 바닥에 풀도 한 줌 집어 까네요. 왜 그러냐고 하니 시골에서 하는 방식을 따라해서 그렇답니다. 아보카도 주스를 한 잔 시키니 걸죽한 죽 같이 나와 아보카도와 망고를 섞어 한 잔 마시고 커피를 마시니 멋진 커피 세레머니가 되었습니다.
특히나 커피를 볶는 아가씨가 너무 이뻐 커피맛이 절로 났습니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30여분을 기다리는 멋과 맛의 깊이가 에티오피아 커피의 가치를 더하는 날이었습니다. 모든 카페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어 먹는다니 종주국다운 자존심이지요.
커피의 역사도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원전 6~7세기 양이 빨간 열매를 먹고 흥분하는 걸 보고 칼리라는 목동이 처음 먹어본 게 커피역사의 시작입니다. 커피를 맛 본 칼리는 머리가 맑아지고 상쾌해서 즐겨먹었고 마을사람들이 따라하며 점차 퍼지다 이슬람 수도승들이 즐겨 마시며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됩니다.
이슬람 신비주의자인 수피의 한 분파는 커피를 수행의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9세기 에티오피아를 침략한 아랍을 통해 이슬람권에 전해졌으며 십자군전쟁 때 유럽사람들이 처음 접하면서 유럽으로 전래됩니다. 그렇게 번져간 커피가 지금은 유럽의 문화가 되어 다시 세계각지로 퍼져나갔습니다.
에티오피아는 들여다 보면 볼수록 매력만점입니다. 이야기면 이야기, 자연이면 자연, 문화면 문화, 이제 이틀 째인데 앞으로 알게 될 에티오피아가 기대됩니다.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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