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의 첫 발은 잔지바르였지만 잔지바르는 탄자니아와는 다른 색깔을 가진 섬 나라여서 탄자니아 속의 다른 나라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탄자니아 비자를 가졌어도 잔지바르에 도착하면 입국신고를 별도로 해야 한답니다. 역사적인 인과관계도 있구요. 즉 1964년 잔지바르와 탕가니카 공화국이 합병하며 오늘날의 탄자니아가 탄생했으니까요.
탄자니아는 아프리카 중부의 요충지를 차지하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동물의 왕국을 가능케한 거대한 사바나 대지구요. 아프리카의 꼭지점인 킬리만자로 그리고 아프리카의 폭군 아디아민을 몰아낸 정의의 구세주고,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확립시킨 스와힐리어의 채택입니다. 문제를 풀어가면 탄자니아의 우수성과 중요성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선 광활한 사바나 대지는 고도 1,00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리잡은 넓은 고원평원입니다. 수목이 우거지고 그보다 비옥한 초지가 발달해 초식동물의 파라다이스지요. 이 땅을 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잘 보존함으로써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가장 자연에 가까운 세상을 느끼게끔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들은 경상도 면적과 맞먹는 세렝게티 초원을 경제적 이익을 위해 개발하지 않고, 인류와 동물을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게 올바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탄자니아마저 돈돈하며 모든 땅을 들쑤셔 버렸다면 동물의 왕국은 텔레비전 속에서나 존재했을테니까요.
두번째날은 킬리만자로와 그와 마주한 메루 산입니다. 킬리만자로는 원래 영국이 지배했던 케냐령이었으나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였던 독일의 왕 빌헬름 2세가 간절히 청하자 마지못해 생일 선물로 주었다나요. 빌헬름 2세 때의 재상이 현재의 독일을 만든 비스마르크이니 그의 머리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하여튼 그 덕에 탄자니아는 아직도 킬리만자로 덕을 보지만 케냐는 바라만 볼 뿐 쓰린 마음을 달래봅니다.
우리의 목표는 메루 산입니다. 메루(Meru)는 세메루(Semeru)를 줄인 말로 힌두의 상상 속의 성산이며 우주의 중심입니다. 불가에서는 수미산이라고 합니다. 누구는 티베트의 카일라스를 진짜 메루라고 하고 누구는 메루는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하지요. 제가 가본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텡게르 칼데라 안에 자리잡은 인상적인 화산도 세메루구요. 심지어 앙코르와트 사원 정중앙에 세워진 탑도 세메루입니다. 그 뿐인가요? 모든 만다라의 중심에 자리잡은게 세메루입니다.
우주의 중심이며 진리의 총화지요. 그런데 전혀 관련 없을 것만 같은 아프리카 사바나 대지 위에 왠 메루? 영국통치시대 영국은 아프리카인들을 노동에 동원하는 데 한계를 느낍니다. 미신이 많아 거부하는 게많고, 게으르고 일의 효율이 떨어진다고 판단해서 인도에서 노무자를 대거 이주시킵니다. 그들이 아프리카 착취의 주요 수단인 도로 건설에 투입되지요.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이 아프리카를 떠난 후에도 인도인들은 기후좋고 풍요로운 아프리카에 정착해 새로운 상류층으로 자리잡습니다. 이렇게 정착한 인도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며 삼각뿔 형태의 멋진 산에 메루라는 이름을 지어준 듯 합니다.
출발점인 모멜라게이트를 향해 가는 동안 아루샤 사파리 국립공원을 통과하며 기린도 만나고 얼룩말도 만납니다. 특히 코트를 입은 듯 긴털을 가진 원숭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하면 넓은 초원을 지납니다. 초식동물들이 뛰어놀기 가장 좋은 그런 곳이지요. 우리 일행은 세 명이지만 가이드와 주방장 외에 8명의 포터가 동행하고 별도로 국립공원 관리원이 총을 들고 뒤따라옵니다.
야생동물들이 많아 안전을 위해 한 팀에 한 명씩 안전요원으로 동행한다고 합니다. 총을 보니 고등학교 교련교육을 받을 때 썼던 M1 소총입니다. 탄창이 없어 총알이 없겠거니 하고 물어보았는데, 노리쇠를 뒤로 잡아당기니 총알이 4개나 들어있습니다. 동물을 맞추기보다 쫓는 용도가 아닐까합니다.
하여튼 첫날 숙박지인 미리아깜바까지 900m를 천천히 5시간 동안 오릅니다. 초원은 동물들의 땅이지만 경사진 산은 인간을 위한 휴식처지요. 그래서 요산현자(樂山賢者)라 했습니다. 산은 오를수록 점차 가팔라지고 2,000m가 넘으며 거대하고 짙은 열대우림이 펼쳐집니다. 그러다 숲이 끝나면 아늑한 산장이 나옵니다. 고도는 어느새 2,500m에 다다랐습니다.
미리아깜바 산장은 이전 킬리만자로에서 본 적이 없는 유럽알프스에서나 가능한 정도의 좋은 시설의 산장이었습니다. 산장은 깔끔했으며 전체가 향나무로 지어져 습기가 차지 않아 콘크리트 건물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4명이 들어가는 다인실은 2층 침대가 구비되있고, 수세식 화장실에 세면대, 샤워부스도 있어 산행이 끝난 후 갖는 아늑함이 너무 좋았습니다. 해질녘 전망대에 오르니 건너편 킬리만자로가 밝게 웃으며 호응합니다.
카메라가 망원렌즈가 아니라서 킬리만자로의 웃는 모습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멋진 한 장을 건지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아래로는 광대한 아루샤 국립공원의 초지, 그 위로는 사면을 끌어올리는 킬리만자로 그리고 정점에 다다라 불끈 솟구친 키보 분화구, 하나하나 기우는 빛의 기울기에 따라 천천히 즐기는 자연의 향연이었습니다.
둘째날은 리틀메루(Little Meru)와 빅메루(Big Meru)사이의 암부에 자리한 새들산장(Saddle hut)까지 이어지는 산행입니다. 고도는 3,500m, 적지 않은 높이입니다. 미리아깜바 산장을 출발하면 어제와 같은 열대우림지대가 계속됩니다. 그리고 짧은 거리에 고도를 1,000m 높여야 하므로 경사가 어제에 비해 가팔라집니다. 길은 미끄럽고 단단한 진흙구간이 있어서 국립공원에서 나무사다리를 길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나무 사다리를 딛으며 한발한발 고도를 높여갑니다.
그렇게 2~3시간을 걷다보면 고도는 3,000m를 넘기고 이젠 열대우림이 사라집니다. 대신 꽃송이같이 몽실몽실한 향나무 밭이 가득 들어찹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예쁠 수가 있을까요? 마치 브로콜리 같고 꽃망울을 모아 놓은듯 하고, 버섯을 총총히 집어둔 듯 하고, 그냥 눈으로 보고 가기에 아까워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눈에 보이는 만큼 감동을 기록해두지는 못합니다. 그런 길을 걷다보면 새들산장에 닿습니다. 아직 해는 중천, 리틀 메루에 가서 해 지는 킬리만자로를 카메라에 담으려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3월 중순은 이미 우기에 접어들어 하루종일 구름이 시야를 가립니다. 그래도 리틀 메루를 올랐으니 만족한 오후였습니다.
셋째날은 새벽 3시에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오르고자 한 메루 산은 힌두교 사상에서 세상의 중심이자 진리의 총화, 신성의 결정체로 여겨집니다. 힌두교인이 아니지만 힌두의 철학이 우리 몸에 알게 모르게 베어있는 부분은 많습니다. 윤회사상, 인연, 업보, 자비, 생명존중, 아주 익숙한 단어들이 힌두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들이기도 합니다.
메루 산은 4,500m, 다시 1,000m를 올라야 합니다. 보통은 오르는 데 3~4시간이 걸리고 내려오는데 3시간 정도 걸립니다. 킬리만자로는 마지막 산장인 키보산장에서 분화구능선인 킬만스포인트까지 1,000m를 오르는 데 7시간이 걸리고 내려가는데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이유는 화산재가 쌓인 사면이어서 미끄럼 타듯 줄줄줄 미끄러져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메루 산은 화구능선을 오르는 구간과 화구능선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구간 전체가 화성암 지대입니다. 따라서 하산길이 매우 거칠고 조심스럽습니다. 산행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은 꼭 정상을 목표로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특히 비가 많은 우기에는 표면이 얼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메루 산 정상으로 가는 도중 라이노 포인트(Rhino point)까지만 가면 어떨까요? 높이는 3,800m고 산장에 1시간이면 닿는 안전하고 가벼운 산행거리입니다. 이 곳에서는 잊지못할 한 장의 사진을 남길 수 있는데, 숨쉬는 화산회구(Ash cone)라는 살아있는 화산이 있습니다.
가끔 화산재가 터져나와 옆에 쌓여 쌍꺼풀 진 눈같이 이쁘기도 합니다. 킬리만자로는 정면으로 마주 보기도 메루 산 정상과 마찬가지구요. 정상에서의 성취감이 꼭 필요하지 않다면 리틀 메루나 라이나 포인트로 만족한 새벽산행을 합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잠시 쉰 다음 미리아깜바까지 하산을 하니 하루 산행으로 다리가 뻐근합니다.
넷째날은 모멜라게이트로 하산하여 4일간의 메루 산행을 마감합니다. 하산하며 공원 관리인에게 워킹 사파리(walking safari)에 대해 듣고 잠시 고민했습니다. 대부분의 사파리는 차를 타고 긴 시간을 달려 멀리서 동물을 바라보는 여행입니다. 여러 번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를 해봤지만 차를 많이타고 동물의 왕국에서 보는 거와 같은 생동감이 없어 흥미를 잃은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숲길을 걸으며 동물을 찾아가서 직접 본다는 말에 솔깃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요? 야생동물이 인간의 접근을 허락할리도 없고, 아마 배설물을 보고 멀리서 동물을 보기는 마찬가지일테구요. 고요히 휴식하는 동물을 괜히 복잡하게 할 것 같아 그만 아루샤로 빠져나와 메루 산 트레킹을 끝냈습니다.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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